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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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기업에게 배상해도 은행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금융위원회의 유권 해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키코 판매은행의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안 수용 거부·지연 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배상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지난 27일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전달한 공문에서 “은행이 은행업감독규정 제 29조의 3에 따라 일반인이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키코 피해기업에 대해 지불한다면 은행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키코 피해 배상이 은행법 제34조 2항에 따른 ‘불건전 영업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키코 공대위의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해당 조항은 “은행은 은행 업무, 부수 업무 또는 겸영 업무와 관련하여 은행이용자에게 정상적인 수준을 초과하여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금융위는 ▲준법감시인 사전 보고 ▲이사회 의결 및 사후 정기적 보고 ▲내부통제기준 운영 ▲10억원 초과시 홈페이지 등에 공시 등 규정에 따른 절차를 준수하고 배상 규모가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 은행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키코 배상에 대한 입장을 밝힘에 따라 키코 판매 은행의 배상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키코 판매 은행 중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수용한 곳은 우리은행 뿐이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불수용 입장을 밝혔으며, 신한·하나·대구은행은 5차례나 결정을 미루고 있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금융위의 유권해석에 키코 배상이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키코 판매은행들은 이미 손해액 청구 소멸시효(10년)가 지난 사안에 대해 배상을 추진할 경우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며 배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27일 “이번 유권해석은 은행의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이 배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형법상 배임 여부는 금융관련 법령 해석사항이 아니며, 따라서 금융위가 해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키코 배상이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배임 이슈와 관련해 4개 로펌에서 자문을 받았다”며 “민사상으로는 은행이 배상을 결정해도 사법적으로 판단하기 불가능하다는 게 자문 변호사들의 공통 의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은 주주들의 배임 소송 제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직 국내에 이중 대표 소송이 도입되지 않아 지주사의 개인고객 및 주주가 은행 이슈에 대해 배임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윤석헌 금감원장 또한 지난해 12월 “키코 배상으로 은행에 금전적 손실이 있을 수 있지만 평판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며 “득과 실이 있는 경영상 의사결정을 배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원장이 말한대로 키코 배상을 ‘경영판단’으로 해석한다면 배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배임죄의 ‘고의’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경영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앞서 지난 2002년 대법원은 “경영자가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기업 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으로 경영상의 결정을 내렸으나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만약 법원이 은행이 단기적 손실보다 장기적인 평판 제고 효과가 크다고 판단해 조정안을 수용했다고 해석할 경우, 이 결정은 '경영판단'의 범위에 속하기 때문에 배임 혐의에 따른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한편, 배임 이슈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위가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에 힘을 실어주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조정안 수용 여부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신한·하나·대구은행도 부담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3개 은행이 회신 기한인 내달 8일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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