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다시 고조되면서,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기대하던 국내 반도체산업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삼성전자
미중 갈등이 다시 고조되면서,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기대하던 국내 반도체산업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삼성전자

다시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꿔놓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제재조치가 화웨이 등 중국 IT기업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 두 강대국 사이에 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된다.

◇ 美 '화웨이 제재'에 中 '홍콩보안법' 맞대응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보다 두 달 넘게 연기된 지난 21일 개막한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는 기대와는 달리 악재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이번 양회에서 파격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며 글로벌 경기 침체가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중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실망감을 안겨줬다. 

앞서 지난 15일 미 상무부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공급망을 전면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제재안의 실시까지는 120일간의 유예기간이 남아있어 중국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며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홍콩 의회가 아닌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직접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겠다며 22일 해당 안건을 전인대 안건으로 채택했다. 미국 또한 이날 33개의 중국 기업 및 정부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 국내 반도체 산업 불확실성 커져

미중 갈등이 다시 불붙을 경우 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도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번 갈등의 중심에 화웨이, TSMC 등 통신·반도체 기업이 놓여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술·장비를 사용하는 해외 기업에게도 적용되기 때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반도체 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미국 정부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업계에서는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의 중국의존도가 낮아져 매출 감소로 인한 타격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된 메모리반도체는 총 259억2560만달러로 전년 대비 35.2% 감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와 SK하이닉스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연간 6%, 15% 수준으로, 특히 지난 1분기에는 삼성전자의 주요 5대 매출처에서 화웨이가 빠지기도 했다.

다만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예상 밖의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들어 국내 반도체산업의 중국의존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그와 함께 전체 매출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 실제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18년 32%에서 지난해 24.9%로 감소했는데, 그와 함께 지난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도 전년 대비 24.8%나 줄어들었다. 만약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인해 무너지거나 제재 대상이 다른 중국 기업으로 확대될 경우, 코로나19 이후 매출 회복을 노리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 미중 간 양자택일, 국내 반도체산업 선택은?

또 다른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될수록 국내 반도체산업은 두 국가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는 미중 갈등 재점화로 트럼프 정부에 ‘멱살’이 제대로 잡혔다. TSMC는 화웨이로부터 AP(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를 위탁받아 생산해오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곧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 상무부가 화웨이 제재안을 발표한 15일에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 규모의 극자외선(EUV) 기반 5나노미터(nm) 공정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도 TSMC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5일 한국경제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법인 관계자를 만나 미국의 제재와 관계없이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제재조치의 영향과 중국의 공급 요청 모두 무시하기 어려운 국내 반도체 기업에게는 결단을 내리기 곤란한 상황이다. 

특히,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 증설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의 경우 경쟁사인 TSMC가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이 상당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문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돼있어, 미국에 생산시설을 추가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가동 중인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의 증설을 추진하는 것으로 미국의 기대에 부응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중 갈등이 단기간에 봉합될 경우, 국내 반도체산업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하이투자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25일 “미국 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강화가 단기적으로 한국 업체들에 대해 미칠 악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라면서도 “유예기간 중 또는 미국 대선 이후에 이번 조치가 철회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송 연구원은 이어 “장기적으로는 다른 스마트폰 경쟁사들에 대한 반도체 출하가 증가할 것”이라며 “만약 화웨이가 급하게 공격적인 부품 구매에 나선다면 메모리 반도체 수급이 단기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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