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 적격성 심의위원회를 출범·운영한 지 아홉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실한 암호화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빗썸은 지난해 8월 22일 투명한 거래환경 조성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상장 적격성 심의위원회를 발족하고,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암호화폐에 대해 상장 유지 적격성 심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빗썸은 암호화폐의 지속성 및 기술적 기반과 확장성, 시장성 등 내부적인 상장 기준을 규정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암호화폐는 상장 폐지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거래량이 지나치게 적거나 시가총액이 상장 때보다 크게 하락한 경우, 개발자의 지원이 중단됐거나 형사 범죄에 연루된 경우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되며, 2개월간 개선이 없으면 상장 폐지된다.

이처럼 상장 적격성을 검증하기 위한 내부 절차를 도입했음에도, 부실 화폐를 상장했다가 급하게 퇴출시키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 빗썸은 지난 1월 22일 상장된 암호화폐 베네핏(BNP)을 상장 20일 만인 2월 10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당시 빗썸은 “이상거래 모니터링을 통해 재단 물량으로 추정되는 베네핏(BNP) 코인의 부정한 입출금 및 거래를 포착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상장 당시 보고된 베네핏 유통량은 6억7000만개인데, 실제로는 9억개가 빗썸 계좌로 이동한 것. 빗썸은 시세조작 의혹이 있다고 보고 투자유의종목 지정 두 달 만인 4월 8일 베네핏을 상장 폐지시켰다.

얼핏 빗썸의 내부 심사 시스템이 작동해 부실 화폐를 걸러낸 것으로 보이지만, 투자자들은 애초에 상장되지 말았어야 할 암호화폐를 걸러내지 못한 빗썸의 모호한 기준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베네핏 물량 이상은 투자자들도 ‘이더스캔’(이더리움 블록체인상 거래내역과 블록생성 내역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탐색기)을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 상장 심사가 철저했다면 애초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라는 것. 빗썸의 피해 보상안 발표에 투자자들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반응하는 이유다.

반면, 빠르게 퇴출돼야 하는 부실 암호화폐는 오히려 상장 폐지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빗썸은 ‘n번방 성착취 사건’의 주요 피의자인 ‘박사’ 조주빈이 입금 수단으로 사용해 주목을 받은 대표적 다크코인 ‘모네로’를 국내에서 가장 최근까지 유통한 거래소다. 모네로는 일반적인 암호화폐와 달리 거래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다크코인’으로 국내 거래소 대부분이 거래지원을 포기한 암호화폐다. 

실제 업비트의 경우 지난해 9월 모네로를 포함해 6종의 다크코인을 상장 폐지했으며, 코인원과 고팍스 등은 애초에 모네로를 상장도 하지 않았다. 반면 빗썸은 ‘n번방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지난달 16일 모네로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한 뒤, 이달 14일 공지를 올려 오는 6월 1일부터 모네로에 대한 거래지원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빗썸의 모호한 상장·폐지 기준 때문에 엉뚱한 암호화폐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지난 15일 월간조선에 따르면, 빗썸은 최근 한 암호화폐 업체에 투자유의종목 지정을 통보했다. 해당 업체가 발행한 암호화폐의 시세가 급락한 데다, 암호화폐 제작 대행업체 관계자의 개인 계좌가 해킹을 당한 것이 이유였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대행업체 관계자의 개인계좌는 암호화폐 발행업체의 계좌가 아니며, 피해액은 대행업체 관계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복구할 수 있다고 소명했음에도 빗썸이 일방적으로 투자유의종목 지정을 결정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해당 업체는 코로나19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 전반이 침체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격방어에 성공하고 있다며, 시세 급락 또한 투자유의종목 지정의 합리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가상자산 공시 플랫폼 쟁글에 따르면 빗썸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총 10개의 암호화폐를 상장 폐지하고, 20개의 암호화폐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같은 기간 신규 상장된 암호화폐는 총 16개. 부실한 검증으로 인해 잦은 상장과 그에 따른 빈번한 상장폐지가 이어지면서, 결국 피해는 투자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빗썸이 암호화폐 검증 절차의 투명성을 높여, 모호한 상장 기준에 대한 투자자 불만을 달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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