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국정농단 및 경영권 불법 승계, 노조와해 등 그동안 비판받아온 일련의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과문을 “과감한 결단”이라고 평가하며 삼성그룹의 변화를 기대하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과거 삼성그룹 오너일가의 사과문보다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이건희 사과와 이재용 사과의 차이

이 부회장의 이번 대국민 사과는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과 부친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오너일가를 통틀어 6번째 사과다. 고 이병철 회장은 지난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의 뜻을 밝히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등으로 세 차례나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까지 6번의 대국민 사과 모두 오너일가가 사법처리에 직면한 상황에서 나왔다.

특히, 가장 최근인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은 총 10가지의 구체적인 경영쇄신안이 담겨 있어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과 대비된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스스로 삼성전자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아내인 홍라희 당시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 등도 함께 사임할 것을 약속했다. 

이 밖에도 이건희 회장의 경영쇄신안에는 ▲전략기획실 해체 및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사임 ▲차명계좌 실명 전환 및 납세 후 남은 돈을 사회 환원 ▲금융계열사 경영 투명화 및 은행업 진출 포기 ▲삼성과 직무 연관성 있는 사외이사 선임 포기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매각 및 순환출자 구조 해소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회장을 후임자로 임명 후 소규모 업무지원실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던 ‘전략기획실’과 ‘차명계좌’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담겨 있던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에는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6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이제는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뿐,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7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2008년에는) 전략기획실 해체한다든지 본인이 물러나겠다든지 부당하게 얻은 이익은 다 사회에 환원하겠다든지 이런 것을 다 이야기했다”며 “이번에는 사실 구체적인 게 하나도 없다. 역대 사과문 중에서 이렇게 아무 현실적 구체성 없이 이루어진 사과문을 저는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시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시스

◇ 이건희의 10가지 약속, 실천은 얼마나?

관건은 사과문의 ‘구체성’보다 실천 여부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기존에 비판받아온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이 있다면 선대의 구체적인 사과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아무리 구체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해도, 실질적인 개선 노력이 없다면 말뿐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이건희 회장이 2008년 발표한 경영쇄신안에 포함된 10가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당장 이건희 회장부터 대국민 사과 후 2년 만인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아내인 홍라희 여사도 2011년 리움 관장으로 복귀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2009년 말 삼성전자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최고경영책임자(COO) 직책을 맡았다. 

비자금 조성, 정치권 로비 등 그룹 의사결정의 구심점이었던 전략기획실은 2008년 경영쇄신안 발표와 함께 해체됐지만, 2010년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부활했다. 사실상 간판만 바꿔달았을 뿐 전략기획실과 마찬가지로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은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2017년 다시 해체됐다.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던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금융감독원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64개 은행계좌 및 957개의 증권계좌 중 실명 전환된 계좌는 단 한 개에 불과했다. 실명 전환된 은행계좌 1개 또한 차명계좌주(임직원) 명의로 바뀐 것이었다. 차명계좌에 보관된 4조5000억원의 주식·예금 중 4조4000억원 가량은 다시 이건희 회장에 의해 출금됐으며 대부분의 계좌는 해지되거나 ‘깡통’ 계좌로 남았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 약속도 말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과 직무상 연관성이 없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2016년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만 해도 삼성그룹의 공익법인인 성균관대 소속 현직 교수다.

박 전 장관은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중·고교·대학 후배로 ‘장충기 문자’ 사태 당시 지인의 추천서를 부탁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2월 박 전 장관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자료=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자료=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 이재용, 넘어야 할 산 남아 있어

이건희 회장의 10가지 약속 중 지켜진 것은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의 사임,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 정도다. 전략기획실 해체, 차명계좌 실명 전환 등 핵심적인 사안과 관련된 약속은 사실상 지켜진 것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서도 일부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은, 선대의 잘못이 이 부회장에게 투영된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박용진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건희 회장은 4조5천억원 규모의 차명계좌로 밝혀진 검은 돈에 대한 실명 전환, 누락된 세금납부,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발표문도 12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과 같이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선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검찰의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혐의 등과 관련해 소환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쪽으로 합병 비율이 산정돼 오너의 그룹 지배권 강화에 활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이 최근까지 삼성 전현직 사장급 임원을 잇달아 소환조사한 것도 이부회장의 경영 승계에 위법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대국민 사과에 이어 넘어야 할 산이 또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밝힌 것처럼 준법 경영을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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