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마친 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그룹 창립부터 고수해온 무노조경영 원칙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 노동계는 ‘말보다 실천’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계열사 임금·단체협약부터 성실하게 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며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건으로 많은 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 그동한 삼성 노조문제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고,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지난 1938년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이후 약 80년간 무노조경영 원칙을 고수해왔다. 창립자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직원이 노조를 결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충분한 대우를 해주는 ‘공존공영(共存共榮)’ 원칙을 강조하며 노사분규의 가능성을 경계했고, 이건희 회장 또한 지난 1987년 “삼성은 노조가 필요하지 않은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선대의 뜻을 재확인 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무노조경영을 통해 잦은 노사분규를 억제함으로서 다른 그룹과 달리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등 노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해왔다며, 삼성그룹의 성장은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경영 원칙이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다. 2011년 에버랜드를 시작으로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2014년 삼성SDI에 노조가 들어섰고, 2017년에는 삼성엔지니어링·삼성에스원·삼성웰스토리 등의 계열사에 노조가 결성됐다. 

삼성그룹 또한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론의 비판에 부딪혀 2012년 지속가능보고서부터는 슬그머니 ‘비노조경영’이라는 단어를 빼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결성을 방해한 혐의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회적 압력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단까지 삼성그룹에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까지 국정농단에 연루돼 재판을 받게 되면서, 삼성그룹이 80년간 이어온 무노조경영 원칙을 고집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이 부회장의 ‘무노조경영 포기’ 선언에 대해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 전까지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굳이 이 부회장의 사과를 평가절하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많은 관심 속에 열린 기자회견 가운데 노조 관련 사과의 내용은 상식의 나열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지금 삼성에게는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며 “노조의 조합원 가입 독려를 내용으로 하는 이메일을 삭제하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행위 등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노총은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노동조합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며 삼성 측에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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