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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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봄을 알려주던 벚꽃이 지고 도심의 가로수와 산의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다른 나무들이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싱그러운 잎으로 단장을 시작할 때, 벌써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리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바로 오늘 소개할 ‘느릅나무’이다.

느릅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사는 대표적인 우리나무로서, 산속 물기가 많은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느릅나무의 꽃은 4월에서 5월 초까지 피며, 크기가 작고 가지마다 여러 개의 꽃이 한 곳에 따닥따닥 붙은 모양으로 난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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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특한 모양을 띠는 이유는, 느릅나무 꽃은 꽃잎 없이 수술과 암술만 달린 형태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느릅나무의 열매에서도 독특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열매 모양은 예쁜 타원형 모양으로, 중앙에 씨앗을 품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 열매의 가장자리에는 얇은 조직이 있는데,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개 역할을 한다. 느릅나무 열매는 5월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며, 가지마다 수백 개의 열매가 달린다. 하지만 그중에서 성숙한 나무로 살아남는 것은 소수이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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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씨앗은 마르기 시작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물기가 많은 계곡 주변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느릅나무는 약용자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한방에서 나무껍질은 유백피라고 하며 이뇨제, 항염증 등의 약제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뛰어난 약용가치 때문인지 과학원에서 느릅나무를 연구하던 시절, 무분별하게 벌채된 나무를 곳곳에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전국의 숲속에서 듬직하게 생태계를 지키며, 우리에게 아낌없이 혜택을 제공하는 나무를 소중하게 지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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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의 종류 중에서 다른 느릅나무류와는 달리 가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다. 바로 ‘참느릅나무’이다. 참느릅나무는 산속보다는 주로 도시의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꽃이 피는 시기는 다르지만, 잎과 꽃 모양이 느릅나무와 매우 유사하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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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무에 다닥다닥 맺힌 열매 다발이 느릅나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나무의 생활사를 대변하는 씨앗의 특성은 큰 차이가 있다. 씨앗이 마르면서 생명력을 금방 잃어버리는 느릅나무와는 다르게 참느릅나무 씨앗은 한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씨앗의 강인함 덕분에 건조하고 오염이 많은 도심 속에서 조경수로 활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을 어귀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정자나무인 느티나무도 느릅나무 종류 중 하나이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많이 뻗고 잎이 많이 달리기 때문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로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느티나무는 마을의 귀한 나무로 보호되어 온 덕분에 강원도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95호) 등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많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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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도 참느릅나무와 마찬가지로 오염 환경에 대한 내성이 강하여 도심의 가로수로도 활용되며, 목재의 결이 아름답고, 재질이 뛰어나 공예품뿐만 아니라 건축재로도 활용이 가능한 매력이 넘치는 나무이다. 지금은 주로 가로수로 활용되고 있지만 수천 년 전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를 주 목재 자원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 예로  고려시대 대표적인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느티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느티나무는 모두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잎의 아래쪽이 찌그러진 비대칭 모양이고, 꽃잎이 없는 독특한 꽃을 피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열매에서는 차이가 나타나는데, 느티나무의 열매는 딱딱한 돌멩이 형태이고, 느릅나무와 참느릅나무의 열매는 납작하고 날개를 가진 타원형이다. 느릅나무는 잎이 크고 털도 많지만, 참느릅나무의 잎은 두꺼운 가죽질로 매끈하다.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참느릅나무는 늦은 봄 열매를 맺는 느릅나무와 다르게 가을에 열매를 맺고, 열매 모양에서도 열매 자루가 확실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느릅나무와 구분이 가능하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산과 우리 마을 어귀에서 함께 살아온 느릅나무, 참느릅나무, 느티나무가 있다. 비록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 주는 그늘을 제공하고 약용자원으로, 건축 자원으로 듬직하게 함께 해온 소중한 우리나무들이다. 다가오는 여름,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난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느릅나무 3형제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내주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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