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등 32개국 다크웹 공조수사결과 발표 이후 폐쇄문구가 노출된 사이트 화면. 사진=경찰청
한국과 미국 등 32개국 다크웹 공조수사결과 발표 이후 폐쇄문구가 노출된 사이트 화면. 사진=경찰청

법무부가 이달 말 출소를 앞둔 세계 최대 아동음란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씨(25)에 대한 미국 송환 절차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아동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무거운 미국에서 손씨가 어느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 17일 서울고등법원에 손씨에 대한 인도구속영장을 청구해 20일 발부받았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해 4월 미 연방법무부로부터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 협의를 진행해왔다. 

손씨는 ‘다크웹’을 통해 아동음란물 사이트 W2V를 운영하면서 아동 성 착취물 22만건을 유통시킨 혐의로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손씨는 오는 27일 출소를 앞두고 있었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미국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될 상황에 처했다. 

미국은 아동 대상 범죄에 한국보다 처벌이 엄격하다. 따라서 손씨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중처벌’의 가능성이다. 범죄인 인도법 9조에 따르면, ▲범죄인의 인도범죄 외의 범죄에 관해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범죄인이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지 않았거나 면제되지 않은 경우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

법무부 또한 ‘이중처벌’ 문제를 고려해 미국의 인도요청 대상 중 국내 처벌과 중복되지 않는 ‘국제자금세탁’부분에 대해서만 범죄인 인도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미국 법원이 아동음란물을 배제하고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서만 다룰 경우, 손씨가 여론의 기대처럼 수십 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적다. 

◇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 시 징역 10년 이하

미국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르면 세탁된 금액이 50만 달러 이상일 경우 징역 20년 이하, 50만 달러 미만이면 징역 10년 이하가 법정 권고형이다. 세탁한 자금 또한 몰수되며 50만 달러 이상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손씨가 비트코인을 통해 번 수익은 약 4억원으로 권고 형량은 징역 10년 이하다. 실제 지난 2018년 미국의 암호화폐 트레이더 토머스 마리오 코스탄조는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 16만4700달러를 세탁한 혐의로 애리조나주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5개월을 선고받았다. 손씨의 자금세탁 규모는 이보다 큰 만큼 그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단순 자금세탁이 아닐 경우 형량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지난 3월 미 연방법원은 암호화폐를 통해 15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탁한 주비아 샤나즈에게 징역 1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샤나즈에게 적용된 혐의가 단순한 자금세탁이 아니라 ‘테러리스트 지원을 위한 자금세탁’이었기 때문. 샤나즈는 해당 자금을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IS)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형량이 크게 추가됐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에 대한 공소장. 오른쪽 빨간색 사각형 안에 손씨에게 적용된 혐의 9가지가 나열돼있다. 자료=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에 대한 공소장. 오른쪽 빨간색 사각형 안에 손씨에게 적용된 혐의 9가지가 나열돼있다. 자료=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 '아일랜드판 손정우', 권고 형량은 15~21년

만약 미 사법당국이 손씨를 아동음란물 제작·유포 혐의로 다시 기소할 경우 어떤 형량을 받게 될까?

미 사법당국이 손씨에 대해 제기한 혐의는 아동음란물 광고 및 배포, 국제자금세탁 등 총 9가지다. 미국에서 아동음란물 광고의 최소 형량은 15년, 아동음란물 배포는 초범이 최소 5년, 재범은 최소 15년이다. 미국은 각 범죄의 형량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어, 손씨는 두 가지 혐의로만 최소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물론 이는 손씨가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미 사법당국이 모든 혐의를 밝혀낼 경우의 이야기다. 실제 손씨가 아동음란물 관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받게 될 대략적인 형량은 이미 같은 혐의로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에릭 오언 막스의 사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막스는 ‘토르 웹’을 기반으로 한 ‘프리덤 호스팅’ 서비스를 만들어 수많은 아동음란물 사이트를 호스팅하면서 15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체포된 막스는 이후 5년 동안 구금된 상태로 미국 송환을 거부하며 법정 싸움을 이어가다 결국 2018년 말 미국에 인도됐다. 

미 사법당국이 막스에 대해 내건 혐의는 아동음란물 광고·배포 등 4건으로, 이는 손씨에게 적용된 혐의 9건에 모두 포함돼 있다. 미국 송환 뒤 메릴린드주에서 재판을 받던 막스는 지난 2월 6일(현지시간)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는 유죄협상제(Plea Bargaining)를 운영하고 있는데, 막스 또한 최대한 관대한 형을 받기 위해 이를 이용한 것. 만약 유죄합의가 없었다면 막스가 받을 형량은 최소 20년이 넘는다.

다만 유죄합의를 해도 아동음란물에 대한 처벌 강도가 높은 만큼 형량은 결코 적지 않다. 유죄합의에 따른 막스의 법정 권고 형량은 15년~21년. 하지만 막스의 재판을 맡은 메릴랜드주 법원이 따라야 할 의무는 없으며, 담당판사의 재량에 따라 형량을 추가할 수 있다. 

손씨의 경우 막스와 마찬가지로 유죄에 합의한다 해도 기소된 혐의가 더 많기 때문에 형량은 15~21년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손씨는 W2V를 운영하면서 비트코인을 통해 4억원 가량의 수입을 올려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으며, 막스와 달리 수입 목적의 미성년자 음란물 제작 혐의도 받고 있다.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가 인정되고 형량이 추가될 경우 손씨는 20년 이상의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

◇ 전문가, “동일 혐의로 이중처벌 불가능한건 아냐”

원칙적으로 미 사법당국이 손씨를 이미 국내에서 처벌이 끝난 아동음란물 관련 혐의로 다시 기소하는 것은 어렵다. 한·미 범죄인인도조약 제15조에 따르면, 청구국은 인도받은 범죄인에 대해 ▲인도가 허용된 범죄 ▲인도의 근거가 되는 범죄사실에 기초한 범죄 ▲인도 이후에 발생한 범죄 ▲피청구국이 구금·재판·처벌에 동의하는 범죄 외에는 재판·처벌을 할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손씨가 미국으로 인도될 경우 미 사법당국이 이중처벌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 검사 출신인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미국에서 미국범죄로 처벌하는 것이지 한국에서 있는 것을 처벌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인이 (손씨가 운영한 W2V에서 아동음란물을) 다운로드 했다면, 그게 다 다른 범죄다”라고 말했다. 범죄와 그에 따른 피해가 발생한 장소가 다양하다면, 각각을 다른 범죄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송환된 경우는 아니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동일 혐의로 이중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08년 국내 S기업에 재직 중이던 A씨는 주한미군 간부에게 15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한국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A씨는 사업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연방수사국에 체포돼, 2010년 같은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당시 법무부는 미 법무부에 A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한을 5차례에 걸쳐 보냈으나, 미 법무부는 이를 묵살하고 사법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 관계자는 손씨의 이중처벌 가능성에 관한 <이코리아>의 질문에 "범죄인인도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상대국가와의 조약 및 외교관계상 비밀유지 의무 및 향후 절차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여 현 시점에서는 답변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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