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사진=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1조60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초래한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판매사들이 부실 펀드 회수를 위해 ‘배드뱅크’를 설립하기로 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라임펀드를 판매한 19개사는 이날 만나 라임 펀드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배드뱅크 신설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없지만, 환매 중단된 라임 펀드 잔액 규모가 가장 큰 신한금융이 배드뱅크의 대주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자산만을 인수해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조정 전문기관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이 B기업에게 부동산이나 기계설비를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가 부도가 나면, 배드뱅크는 A은행으로부터 B기업의 담보를 넘겨받은 뒤 유가증권을 발행하거나 담보물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한다. 배드뱅크에 부실채권을 넘긴 A은행은 우량자산만 운용하는 굿뱅크로 전환돼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라임펀드 판매사들이 논의 중인 배드뱅크 또한 라임자산운용의 부실펀드를 인수해 자금 회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임자산운용이 판매한 펀드 중 현재 환매가 중단된 펀드는 플루토FID-1호, 테티스 2호 플루토 TF-1호, 크레디트인슈어런스(CI) 1호 등으로 총 1조6679억원 규모다.

◇ 배드뱅크 추진 계기는 ‘스타모빌리티 사건’

금감원과 라임펀드 판매사가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스타모빌리티 사건’으로 인해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이미 4개 펀드의 환매가 중단된 지난 1월 펀드 자금 중 195억원을 스타모빌리티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매입하는데 사용했다. 스타모빌리티는 라임자산운용의 실질적인 ‘돈줄’로 지목되는 김봉현 회장이 실소유주로 있는 회사다. 

금감원 및 라임펀드 판매사들은 환매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라임 실세로 알려진 김 회장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을 우려해 배드뱅크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드뱅크가 부실펀드 회수를 맡게 되면 라임자산운용도 청산 수순을 밟게 될 예정이다. 다만 배드뱅크가 설립돼도 라임자산운용의 등록이 바로 취소되지는 않는다. 금감원은 지난해 시행한 라임 검사 결과를 토대로 제재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 배드뱅크, 미국의 성공 사례 

배드뱅크를 통한 성공적 금융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메리칸 세이빙스 뱅크(American Savings Bank)를 들 수 있다. 미국 최대의 저축대부조합이었던 ASB는 1980년대 들어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서 30억 달러 규모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1988년 부실자산과 고비용 부채를 배드뱅크로 이관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ASB의 성공 배경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배드뱅크의 운용손실을 부담하고, 부실채권 인수자에게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 미 예금보험공사(FDIC)의 역할이 있었다. FDIC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만큼 철저한 현장감시를 통해 부실채권 정리 과정을 직접 관리했다.

라임펀드 회수를 위해 신설될 배드뱅크 또한 판매사가 출자하는 민간 주도의 기관이지만, 금감원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만큼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배드뱅크 설립 이후에도 라임펀드 회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SB가 배드뱅크를 통해 부실자산 정리에 성공한 것은 정부의 역할도 있지만, 당시 ABS·MBS·정크본드 등의 시장이 활성화돼있어 부실자산 매각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극도로 위축된 상태라 부실자산 처리가 쉽지 않다. 당장 회수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라임CI펀드만 해도, 투자했던 무역금융 매출채권의 회수가 지연되고 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매출채권 상환 의무가 있는 기업들이 상환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배드뱅크를 통한 라임펀드 회수작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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