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슈아 웡 트위터 갈무리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이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화면.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문구와 시진팡 중국 국가주석,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조슈아 웡 트위터 갈무리

현실과 다른 가상의 공간에서 소통과 성취를 맛보기 위해 개발된 온라인 게임이 현실 정치와 직접 맞닿은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게임 콘텐츠나 사용자에 의한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 홍콩 시위대, ‘동물의 숲’에서 온라인 집회

지난 11일(현지시간) 홍콩 빈과일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닌텐도의 콘솔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타오바오·징둥 등 중국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모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명목상으로는 동물의 숲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 정식 발매된 것이 아닌 해외 직수입 패키지가 유통된 것이기 때문에 판매가 중단된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검열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동물의 숲’은 홍콩 게이머들에게 정치적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홍콩 시위대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은 지난 2일 트위터를 통해 “‘동물의 숲’이 홍콩 시위대의 민주화 투쟁을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대중 집회가 중단됐지만, 시위대는 동물의 숲에서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조슈아 웡은 해당 트윗에 홍콩 민주화를 응원하는 문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초상화가 그려진 동물의 숲 게임 화면을 갈무리해 첨부했다. 

시장조사업체 니코파트너스의 중국 전문가 다니엘 아흐메드는 10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에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정식 발매된 적은 없지만, 중국 팬들은 해외 직수입을 통해 게임을 즐겨왔다”며 “타오바오는 2017년부터 시행된 규제에 따라 수입 게임 판매를 금지해왔지만,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해당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흐메드는 이어 “‘동물의 숲’은 ▲게임 내에서 사용자들이 홍콩 시위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했으며 ▲‘동물의 숲’이 소셜미디어 등에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당 콘텐츠를 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판매가 중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중국의 엄격한 게임 콘텐츠 검열

중국 정부 및 온라인 쇼핑몰에서 ‘동물의 숲’ 판매 중단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게임팬들은 조슈아 웡과 아흐메드의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도 중국이 다수의 게임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검열의 잣대를 들이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 게임개발사 ‘엔데믹 크리에이션즈’가 개발한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게임이 최근 중국 앱 마켓에서 퇴출당했다. 이유는 ‘불법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미 2012년 출시된 뒤 중국 당국의 판호(영업허가)를 받고 유통되던 게임이 8년 만에 퇴출당한 것에 대해, 게이머들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의식해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게임 내용뿐만 아니라 게이머들의 발언도 통제의 대상이다. BBC에 따르면, ‘리그오브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게임즈는 지난해 10월 게임 내 채팅창에서 ‘위구르(Uyghur)’ 등 중국과 관련된 특정 단어를 차단한 사실이 밝혀져 게이머들의 비판을 받았다. 라이언 리그니 라이엇게임즈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금지해서는 안 되는 단어들을 금지했다”며 빠르게 사과했지만, 게이머들은 라이엇게임즈의 모기업은 중국 기업 텐센트라는 점에서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게임업계, 중국 눈치보기 심각

중국은 게임 컨텐츠가 음란물·약물·폭력·도박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 외에도 중국의 헌법을 위반하거나, 국가의 통합성·국익·안보·전통문화 등을 해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에도 서비스를 금지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도 게임중독 및 과도한 과금 유도 요소 등을 규제하고 있지만, 중국과 같이 정치적 표현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각에서는 거대한 소비시장을 가진 중국의 게임 검열이 게임개발사와 사용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지난해 미국의 게임개발사 블리자드는 공식 대회에서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을 한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블리츠청’에게 상금 몰수 및 1년간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이후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알랜 브랜 사장이 직접 공식 사과에 나섰지만, 미국 유력 정치인들의 공식 비판이 이어지자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사드 배치 이후 판호 발급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국내 게임업체들도 이 같은 ‘중국 눈치보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게임의 수출대상 국가 중 중화권 국가의 비중은 60.5%였다. 사드 배치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비중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을 게임에 담는 것은 무리다. 

한편, 중국·홍콩 게이머들은 이번 ‘동물의 숲’ 판매 중단 사태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일부 중국 게이머들은 “아름다운 게임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며 조슈아 웡을 비롯해 홍콩 게이머들을 비난하고 있다. 조슈아 웡은 10일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받은 악성 메시지를 공개하며 “시진핑 주석이 게임 판매를 중단시켰는데 화난 게이머들은 정부가 아니라 나를 비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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