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흑인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백인보다 2.5%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위스콘신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위스콘신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흑인들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백인보다 2.5%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위스콘신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위대한 균형자(The Great Equalizer)다. 바이러스는 당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유명한 사람인지, 어디에 살고 몇 살인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마돈나가 SNS를 통해 코로나19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마돈나의 주장과는 다르다. 질병은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먼저 찾아간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취약계층은 바로 ‘흑인 커뮤니티’다. 

◇ 美 코로나19 확진자, 감염률·사망률 흑인 '최다'

미국은 아직 코로나19와 관련해 전국 차원의 인종별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흑인들이 다른 인종보다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있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부 주 및 카운티에서는 지역 단위 인종별 통계를 공개하고 있어, 국지적으로만 인종간 차이를 추정할 수 있다.

위스콘신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확진자 2756명을 인종별로 분류하면 백인이 1342명(48.7%)으로 가장 많았으며, 흑인은 741명(26.9%)로 두 번째였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위스콘신주의 인구는 백인 87.1%, 히스패닉 6.9%, 흑인 6.7%, 아시아계 3.0% 등으로 구성돼있다. 백인 확진자 비중은 인구 비중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흑인 확진자 비중은 인구 비중 대비 4배나 높다. 

사망률은 더욱 심각하다. 위스콘신주 코로나19 사망자는 총 99명. 이중 백인이 43명, 흑인이 42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확진자 수와 비교해보면 흑인 사망률이 5.7%로 백인 사망률(3.2%)보다 2.5%p 높다. 

시카고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시카고트리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인구 중 흑인 비율은 30.1% 수준이지만, 코로나19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은 무려 68.6%에 달한다. 반면, 시카고 인구의 32.8%를 차지하는 백인은 코로나19 사망자 중 13.6%를 차지한다. 로리 라이트풋 시카고 시장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숫자를 보니 숨이 멎을 정도”라며 “이 수치는 우리 모두에게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연방정부도 흑인 커뮤니티가 처한 위험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 “왜 흑인 사망률이 다른 인종보다 3~4배나 높게 나오나?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파악해야만 한다”며 “2~3일 내에 관련 통계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 흑인 남성이 7일(현지시간) 올린 트윗. 사진=트위터
미국의 한 흑인 남성이 7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강도로 오해를 받는 것이 두렵다는 트윗을 올려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사진=트위터

◇ 인종 간 코로나19 취약한 이유는 '불평등 구조'

전문가들은 흑인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높은 이유로 인종 간의 생물학적 특성의 차이보다는, 미국 사회의 뿌리갚은 인종간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지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적고 건강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흑인들은 다른 인종에 비해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코로나19 감염 시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앤소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은 지난 7일 “이는 흑인들이 더 잘 감염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감염됐을 때 그들이 처한 당뇨병, 고혈압, 비만, 천식 등의 건강 상태의 문제다. 이 때문에 흑인들은 감염 후 중환자실로 옮겨지거나 사망에 처할 위험이 더욱 높다”고 설명했다. 

흑인들의 일자리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봉쇄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에서도 유급휴가 및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이 적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직장 복지도 불충분한 일자리를 가진 흑인들에게 이러한 혜택은 동화 속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시카고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한 흑인 여성은 7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최근 몸이 좋지 않은데, 매일 버스로 통근한 것 때문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천식·고혈압 유병자인 이 여성은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만약 재택근무나 유급휴가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 여성이 느낄 감염 공포도 덜 했을 것이다.

흑인 커뮤니티를 향한 사회적 편견도 코로나19의 불평등한 확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거주하는 아론 토마스는 최근 영국 매체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7일 “나는 미국 CDC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신뢰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에 감염되는 것보다 무장 강도로 오해를 받는 것이 더 두렵다”며 “내가 마스크를 쓴 채 가게에 들어간다면 아마도 살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질 낮은 일자리, 밀집된 주거환경과 기저질환, 사회적 편견 등 흑인 커뮤니티를 둘러싼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결국 의료접근성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바이오테크 기업 ‘루빅스 라이프 사이언스’가 103개 의료시설의 자료를 기반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흑인 환자들은 기침이나 발열 등 의심 증상이 발현된 경우에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확률이 다른 인종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드렉셀 대학의 역학 전문가 셰럴 바버 교수는 7일 NYT를 통해 “흑인 커뮤니티는 구조적으로 질병이 확산될 수 밖에 없는 토양을 이루고 있다”며 “이는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코로나19의 인종 간 격차를 형성하는 기존의 불평등한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 코로나19 사각지대 살펴봐야

미국 흑인 커뮤니티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투명하고 신속한 방역대책과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방역선진국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많은 의료 취약계층이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2월 발생한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 집단감염 사건, 발생한 구로구 콜센터 집단감염 사건은 전염병이 전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득이 적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매일 정해진 실적을 채워야 생계가 보장되는 취약계층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에 가깝다. 

미국 방역대책을 이끌고 있는 앤소니 파우치 NIAID 소장은 7일 “코로나19와 같은 사태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불평등하다”며 “전염병은 우리 사회의 진짜 취약한 부분에 조명을 비춘다”고 강조했다. 방역선진국이라 자부하기 전에 코로나19가 비춘 우리 사회의 ‘의료 사각지대’를 먼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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