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는 휴지 사재기, 해외에선 난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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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는 휴지 사재기, 해외에선 난리 왜?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0.04.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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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대형마트 휴지 진열대가 비어있는 모습. 휴지사진=ABC뉴스 방송화면 갈무리
미국의 한 대형마트 휴지 진열대가 비어있는 모습. 휴지사진=ABC뉴스 방송화면 갈무리

# 미국에서 유학 중인 대학원생 A씨는 최근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코로나19의 여파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집에 휴지가 남아있는데도 매번 휴지가 진열된 코너를 기웃거리는 것이 버릇이 됐기 때문. 최근에는 대형마트 진열대에 16개들이 휴지 두 묶음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옆에 있던 이웃 주민과 사이좋게 한 묶음씩 나눠 가지기도 했다. A씨와 함께 휴지를 ‘득템’한 운 좋은 주민은 “세상에, 휴지가 남아있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A씨는 소중히 휴지를 안고 계산대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건용품이나 생필품을 사재기하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휴지는 각종 사재기 대상 품목 중에서도 가장 구매 난이도가 높은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 日, 가짜뉴스로 휴지 사재기 확산

코로나19 이후 해외에서 휴지 사재기가 발생하는 이유로는 잘못된 정보가 담긴 ‘가짜뉴스’가 꼽힌다. 지난 2월 말 일본에서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휴지 원재료 수입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제한될 수 있으니 휴지를 사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유포된 바 있다. 이후 일본 내에서는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에 이어 휴지 사재기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휴지의 재료는 펄프, 마스크 필터의 재료는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 부족한 마스크를 생산하느라 휴지 재료인 펄프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주장은 기초적인 사항도 검색해보지 않는 황당무계한 가짜뉴스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펄프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도 아니다. 일본제지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국의 펄프 생산량은 1784만9000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비중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미국(4713만5000톤, 25.2%), 브라질(2114만8000톤, 11.3%)에 비하면 전 세계 휴지 공급망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휴지 사재기가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2월27일 트위터에 올라온 휴지 관련 가짜뉴스가 리트윗된 횟수는 매우 적었던 반면, 가짜뉴스를 부정하는 트윗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수록 휴지 사재기가 심해졌다는 것. 

이는 잘못된 정보에 속은 사람들이 휴지 사재기를 계속하면, 결국 자신이 쓸 휴지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짜뉴스로 인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개별 소비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렸지만, 이것이 결국 집단적 차원에서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2018년 국가별 펄프 생산량.(단위: 천톤) 자료=일본제지연합회
2018년 국가별 펄프 생산량.(단위: 천톤) 자료=일본제지연합회

◇ 휴지 남아도는 한국, 이유는?

휴지 사재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반면, 유독 한국에서는 휴지 품귀 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 사이에서는 대형마트에 진열된 휴지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를 통해 자랑하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휴지 사재기를 피할 수 있었던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개방된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강력한 봉쇄조치를 시행한 해외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 초기부터 공격적인 검사를 통해 확산을 억제하며 지역 봉쇄와 같은 극단적 조처를 시행하지 않았다. 확진자 동선 등의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돼 동선과 겹치지 않는 매장은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온라인 유통채널을 통한 구매도 용이해 휴지 등의 생필품을 사재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반면 영국·독일·호주 등은 2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할 정도로 강력한 봉쇄조치를 시행하고 있어, 한국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고 위기감도 높을 수밖에 없다. 초기 대응 부실로 인해 과격한 방역대책이 도입할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소비자들의 ‘사재기’ 심리는 더욱 확산될 수 있다.

미국 제지회사 조지아퍼시픽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지글을 통해 휴지 공급이 언제 정상화될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자료=조지아퍼시픽 홈페이지
미국 제지회사 조지아퍼시픽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공지글을 통해 휴지 공급이 언제 정상화될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자료=조지아퍼시픽 홈페이지

◇ 미국, 휴지 품귀 실질적 위협

가짜뉴스에서 시작된 ‘휴지 사재기’지만, 정보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휴지와 마스크 재료를 혼동한 트윗은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휴지 수요 급증과 공급망 붕괴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

미국 제지업체 ‘조지아퍼시픽’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성명에서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면서도 “공급망과 관련된 여러 변수 때문에 진열대에 휴지가 언제 다시 채워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세계 펄프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국가로 휴지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휴지 공급이 모자랄 수 없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공급망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요까지 급증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감염 공포로 인해 국내 펄프 운송이 지연되거나 공장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가동률이 급감한다면, 휴지는 정말 사재기가 필요한 물품이 될 수 있다. 

ST페이퍼앤티슈의 공동소유주인 사힐 탁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200명의 근로자들이 주 7일, 24시간 체제로 일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인미답의 상황을 겪고 있다. 만약 근로자 중 한 명이 아파서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나”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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