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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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현금 사용이 감소하면서, 비대면·비접촉 결제수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앙은행에서 직접 발행하는 전자화폐(CBDC) 개발이 촉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6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필요성이 높아질 수 있는 미래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CBDC 도입에 따른 기술적, 법률적 필요사항을 사전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뜻한다. 종종 암호화폐와 동일시되지만, 민간이 아닌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해 통제하는 데다, 가치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CBDC는 법정통화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CBDC는 이전부터 각국에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현금을 대체할 결제수단이자, 금융기관간 결제 효율성을 높일 대안으로 주목받아왔으나,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력을 파악하기 어려워 국내에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결제수단인 현금 비중이 극단적으로 감소하고, 소비 위축 및 유동성 위기가 이어지며 CBDC가 위기 극복을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 코로나19, 현금↓ 비대면 결제수단 비중↑

지난 5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코로나19 확산이 최근 주요국 지급수단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감염 우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및 영업점 봉쇄 등의 영향으로 현금 사용이 크게 감소했다. 실제 영국의 ATM 네트워크 운영기관 ‘LINK’는 최근 영국 내 현금 사용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JP모건체이스 은행, 캐나다 데자르뎅 은행 등 주요국 대형은행들이 다수의 영업점을 폐쇄하고 대면 영업을 줄이면서 현금에 대한 접근성 또한 크게 악화됐다. 

반면, 비대면·비접촉 결제수단의 비중은 크게 늘었다. 국내의 경우, 지난 2월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34.3%나 상승하며, 전체 유통업체 매출에서 49%의 비중을 차지하는 등 성장세가 뚜렷했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RTi 리서치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소비자의 30%가 NFC 카드, 스마트폰과 같은 비접촉 지급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70%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이를 계속 사용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 또한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온라인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10만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검토 중인 CBDC 운영체계 예상도. 자료=바이낸스 리서치
중국 인민은행이 검토 중인 CBDC 운영체계 예상도. 자료=바이낸스 리서치

◇ 주요국 CBDC 논의 활발

이처럼 전통적인 대면 결제수단의 비중이 줄어들고 비대면 결제수단으로의 이행이 빨라지면서, 코로나19 사태가 CBDC 발행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감염 우려로 현금 접근성이 제약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한 CBDC가 소비 위축을 해소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특히, 세계결제은행(BIS)은 CBDC가 “소액결제용 CBDC를 포함하여, 높은 복원력과 접근성을 갖춘 중앙은행 운영 지급결제 인프라의 출현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록 최종 투표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미국 의회 또한 지난달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개인 전자지갑에 ‘디지털 달러’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미 CBDC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던 국가에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CBDC 발행 지지론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캐나다·싱가폴·유럽연합(EU)·일본 등은 지난 2016년부터 금융기관간 결제 효율화를 위한 거액결제용 CBDC 연구 및 테스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중국·터키·스웨덴 등은 현금 수요 감소에 대응해 지급결제시스템을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소액결제용 CBDC 시범운영을 준비 중이다.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 CBDC, '디지털 양극화' 우려 해소해야"

다만, CBDC 발행이 실제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중한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액결제용 CBDC의 경우 모든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결제수단인 만큼,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현금의존도가 높고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 및 장애인 등의 경우, CBDC가 현금을 대체하면 심각한 금융소외를 경험할 수 있다. 실제 호주 내 30여개 지역 단체는 지난달 27일 호주 정부에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정책으로 인터넷 접근성이 낮은 저소득층 및 벽지지역 주민들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며, 디지털 양극화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CBDC가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검토하기 위해 지난 2월 금융결제국 내 신설된 디지털화폐연구팀 및 기술반을 중심으로 CBDC 관련 연구를 수행할 방침이다. 또한, 기술 및 법률 검토를 위하여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법률자문단을 운영하고, 은행 내 태스크포스(TF) 등도 구성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오는 8월까지 CBDC 설계·요건 정의 및 구현기술 검토 등 기반업무를 마무리하고, 9월부터 업무프로세스 분석 및 컨설팅에 착수할 방침이다. 또한, 내년 1월부터는 CBDC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년 12월까지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CBDC 발행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여온 한국은행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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