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대다수 기업들이 면접 등 채용일정을 연기하는 가운데 지난 3일 서울 소재 한 대학교 취업광장 부스가 텅 비어있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대다수 기업들이 면접 등 채용일정을 연기하는 가운데 지난 3일 서울 소재 한 대학교 취업광장 부스가 텅 비어있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경기가 둔화되면서 고용시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채용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갈 곳을 잃은 가운데, 직장인들도 언제 해고통보를 받을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다.

◇ 주요 기업 채용일정 연기, 갈 곳 없는 취준생

상반기 채용일정을 기다리던 취준생들에게 올 봄은 잔인한 계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 주요 기업들이 채용 일정이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 감염 위험으로 인해 채용설명회 및 시험, 면접 등의 일정을 진행하기 어려워지자 언택트(비대면) 면접 등의 대체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채용 일정을 잠정적으로 연기하는 모양새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에는 3월 11일부터 계열사별로 신입사원 공개채용 서류접수를 시작했지만, 올해는 이보다 약 한 달간 채용 일정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서류전형 통과자를 대상으로 한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도 통상적으로 4월에 실시됐던 것과 달리 5월 중 일정을 다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입사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역량검사 일정을 지난달 15일로 예정했다가 무기한 연기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이미 상반기 채용 일정을 4월 이후로 연기했으며,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채용설명회 ‘LG 테크 콘퍼런스도’ 취소됐다. SK·현대차 등도 채용 일정을 잠정 연기한 상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인원이 밀집하는 채용설명회나 시험, 면접 등을 예전처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채용도 모두 멈췄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9일 시행 예정이었던 국가공무원 5급 공채 시험을 비롯해 외교관후보자 선발 1차 시험, 지역인재 7급 수습직원 선발 필기시험을 연달아 연기했다. 이달 28일 예정된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 또한 일정을 재조정해 5월 이후 시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상반기 신입 공채 일정이 전반적으로 미뤄진 상황에서 취준생들이 공백기를 견딜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지난 1~2월 등록된 구인 공고는 총 118만327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도 줄어들고 있는 셈. 3월 통계까지 추가될 경우 감소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직장갑질119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자료=직장갑질119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 연차 강요에 무급휴가, 해고·권고사직까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직장인들도 취준생과 마찬가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15일~21일 받은 이메일·카카오톡 제보 857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와 관련된 경우는 315건으로 전체 제보의 36.8%에 달했다. 

항목별로는 무급휴가 강요가 117건(37.1%)으로 가장 많았고, 해고·권고사직 67건(21.3%), 불이익·기타 60건(19.0%), 연차강요 43건(13.7%), 임금 삭감 27건(8.9%) 등의 순이었다. 해고·권고사직의 경우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달 첫째주에 비해 3.2배나 증가해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가 연차강요와 무급휴직에 이어 해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특히, 비정규직은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희망퇴직을 모집하거나 무급휴가 등의 절차가 선행하는 대기업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고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특히 관광·항공 등 타격이 심한 업종에서는 비정규직 인원 감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 대한항공 기내 청소를 맡은 하청업체 이케이맨파워는 최근 경영 상의 위기를 이유로 52명의 직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문제는 이들이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 지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고용유지지원금은 휴업·휴직 기간 고용을 유지한 사업주에게 정부가 수당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채용과 해고가 빈번해 지원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휴업수당 대신 해고통보를 받는 형편이다. 

실제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취업자 2735만명 중 휴업수당 대상자는 607만명(22.2%)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미가입자 및 기간제 노동자, 파견직, 사내하청 등 77.8%의 노동자는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18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대 약 25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료=국제노동기구(ILO)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18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대 약 25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료=국제노동기구(ILO)

◇ 전 지구적 고용불안, 정부 선제적 대응 필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불안은 한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18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최소 530만개에서 최대 247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사라진 일자리 수(약 2200만개)보다 더 많은 수치다. 

ILO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축의 타격이 고령층과 젊은 사회초년생, 여성, 이주노동자 및 비정규직 등 고용시장 내 취약계층에게 집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위기가 계층 간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는 금융시스템이 아니라 실물경제의 위기인 만큼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더 심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기존의 고용지원책보다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고용시장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LO는 ▲직장 내 노동자 보호 ▲고용 촉진 ▲일자리 및 소득 지원 등 세 가지를 축으로 삼아 유급휴가 지원,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 및 취약계층 일자리 보호등 구체적 정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직장갑질119 또한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소득보전금’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노동소득보전금은 사업주가 신청하는 기존 고용유지지원금과 달리 개별 노동자가 직접 신청해 평균 임금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직장갑질119는 “고용유지지원금은 정규직 일부에게만 적용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노동소득보전금을 우선 지급하면 고용유지지원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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