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코로나19 관련 은행권 간담회를 주재,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코로나19 관련 은행권 간담회를 주재,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0조원 규모의 채권안정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의 긴급처방으로 국내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시장의 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및 8개 주요 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이후 채안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채안펀드는 채권시장 경색으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유동성 지원 및 국고채와 회사채의 과도한 스프레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설립된 펀드다.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들은 물론 우량 기업까지 회사채 발행에 곤란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은 채안펀드를 통해 우량 회사채를 매입해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돕고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도록 방지할 계획이다. 

앞서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1999년 대우채 환매 사태 당시 각각 채안펀드와 채안기금을 조성해 위기에 대응한 바 있다. 채안기금은 은행·보험권을 중심으로 약 30조원이 조성됐으며, 채안펀드는 산업은행 2조원, 은행권 6조원, 보험·증권사 2조원 등 총 10조원 규모로 조성됐다.

그렇다면 이번 채안펀드 재가동은 채권시장 안정화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채안기금과 채안펀드 운용 이후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금리격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1999년 채권안정기금, 2008년 채권안정펀드 운용 후 신용 스프레드 추이. 자료=NH투자증권
1999년 채권안정기금, 2008년 채권안정펀드 운용 후 신용 스프레드 추이. 자료=NH투자증권

특정 채권과 국고채 금리의 차이를 뜻하는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될수록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해당 기업의 업황이 악화돼 부도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금융위기로 확대된 신용 스프레드가 채안펀드 운용 후 감소했다는 것은 기업의 자금조달이 원활해지고 부도 위험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번 채안펀드도 단기적으로 뚜렷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NH투자증권 한광열 연구원은 “과거 채안펀드 운용이 시작된 시점 이후 크레딧 스프레드가 축소되었으며 시장이 안정화됐다. 채권 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을 겪었던 기업에게 단기 유동성 공급, 시장의 부도 우려도 낮췄다”며 “기업들의 단기 유동성 부족 우려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크레딧 시장에 단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를 고려할 때 채안펀드 규모가 좀 더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국내 회사채 약 51조원어치 중 4월분은 약 6조5000억원 수준. 이는 지난 1991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그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회사채 발행이 늘어난 데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도 회사채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기 때문.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오는 6월 이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약 2조5000억원, CP·전단채가 25조8000억원”이라며 “보수적으로 50%가 상환이 안 된다 가정할 때 채안펀드가 대략 15조원 이상 있어야 시장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시장 상황에 따라 채안펀드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실제 1999년 채안기금은 최초 10조원에서 30조원으로 규모가 점차 확대된 바 있다. 

금융위는 “펀드가 적시에 집행될 수 있도록 기존 약정대로 은행권이 중심이 되어 10조원 규모 펀드 조성에 기여하겠다”며 “자금소진 추이를 보아가며 펀드규모 확대가 필요한 경우 증액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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