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19일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채권안정펀드,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19일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채권안정펀드,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피운 불씨가 회사채 시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회사채 수요도 함께 감소하면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 우량 기업도 미달 사태, 3월 회사채 수요 ‘급랭’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3일 하나은행(신용등급 AA)은 3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투자자 모집)을 실시했으나, 2700억원에 그쳐 목표액에 미달했다. 다행히 하나은행은 이날 추가로 800억원을 모집하면서 3500억원을 발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신용등급이 높고 안전한 은행채도 목표액을 바로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포스코그룹 계열사 포스파워(AA-) 또한 17일 3년 만기 회사채 500억원을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매수신청은 400억원에 불과했다. 키움캐피탈(BBB+)도 수요예측에서 목표액 5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170억원을 모집하는데 그쳤다. 

당장 지난달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금리가 하락하고 선제적 자금확보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회사채 발행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월 회사채 발행액은 12조316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5110억원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회사채 발행 규모도 크게 줄어들었다. 3월 들어 회사채 발행액은 첫째 주  1조7558억원, 둘째 주 1조4245억원, 셋째 주(19일까지) 5943억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2월 마지막 주 발행액(4조2442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기업까지 미달 사태를 겪을 정도로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면서 경기 침체로 인한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기업에는 악재가 겹쳤다. 게다가 일부 기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신용등급 하락 위험까지 있어, 자금 확보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조만간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도 문제다. 오는 4월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6조5495억원. 당장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BBB+)만 해도 4월 24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기존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면, 자칫 차환리스크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 

◇ 미국도 회사채 리스크 증대

이 같은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회사채 리스크가 커지다 보니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직접 회사채 매입에 나서서 상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8일 벤 버냉키·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연준은 의회에 투자적격 등급의 회사채를 제한적인 규모로 살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은 유럽중앙은행(ECB)이 7500억 유로(한화 약 1037조원) 규모의 국채 및 회사채 매입을 선언한 시점이다.

실제 버냉키 전 의장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CP매입기구(CPFF)를 설치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등 공격적인 개입에 나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중앙은행이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손실을 직접 줄일 수는 없지만, 바이러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통제하고 경제가 신속하게 회복될 수 있음을 확실히 함으로써 사태의 경제적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며 과거와 같은 양적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기재부, "채안펀드, P-CBO 확대해 기업에 자금조달"

그렇다면 실제로 중앙은행의 회사채 매입이 위기 극복에 효과가 있을까?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연구원은 19일 “리먼사태 당시에도 (연준이) 돈을 풀고, 제로금리를 해줘도 주가는 계속 내렸다. 당시 주가는 문제의 핵심인 모기지 채권을 사주면서 오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며 “연준의 CP 매입 선언은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서서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연준은 버냉키 전 의장의 양적완화 선언 이후 2009년 1월부터 모기지 채권의 매입에 나섰고, 미 증시 또한 3월 저점을 기록한 뒤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조 연구원은 “연준이 공격적인 완화정책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여전히 회사채 시장의 위기 가능성, 나아가서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회사채 시장 개입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매입대상을 회사채로 넓혀 좀 더 공격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필요시,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P-CBO) 확대 등 준비된 컨틴전시 플랜에 따른 시장안정조치를 적기에 신속 가동하여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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