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대회의실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5%포인트를 인하, 0.75%로 사상 첫 0%대로 진입 했다. 사진=뉴시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대회의실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5%포인트를 인하, 0.75%로 사상 첫 0%대로 진입 했다. 사진=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제로금리’를 선언하자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50bp(0.5%)나 인하하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화정책만으로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쇼크를 회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한국은행은 임시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50bp 하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미 연준이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1.00%~1.25%에서 0.00%~0.25%로 100bp 인하한 지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이번 결정으로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0%대 금리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

한은의 이번 결정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은은 “지난 통화정책방향 결정 이후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심화됐다. 또한, 그 영향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주가, 환율 등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증대되고 국제유가가 큰 폭 하락했다”며 “이에 따라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확대하여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성장과 물가에 대한 파급영향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빗나간 연준의 ‘바주카포’ 美 증시 역대급 폭락

금융권에서는 미 연준의 ‘제로금리’ 선언에 대해 ‘바주카포’를 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쇼크를 막기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 100bp 인하라는 파격적인 수단을 꺼내들었다는 것. 한은의 인하 폭은 연준보다는 적지만 역대 최초로 0%대 금리 진입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한국산 바주카포라 볼 수 있다. 

문제는 통화정책을 통한 금융위기 극복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 실제 미 증시는 연준의 제로금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패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16일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997.10포인트(12.93%) 급락한 2만188.52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 지수는 11.98% 하락한 2386.13, 나스닥 종합지수는 12.32% 떨어진 6904.59로 장을 마감했다.

연준의 바주카포가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통한 위기 극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대표적 통화정책 중 하나다.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에 좀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면, 그만큼 대출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생기고 이를 통해 기업과 가계에 자금이 공급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촉진된다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이미 장기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져 추가적인 금리 인하의 효과가 약화된 데다, 금리 인하의 효과가 실제 시장에 미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즉각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위기가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부실로 인해 나타난 금융위기의 경우 통화정책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번 위기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물경기의 둔화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유안타증권 이재형 연구원은 17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시중 상업은행의 자산과 유동성 여건에 변화를 주는 정책이다. 은행 시스템 위기 때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며 “하지만 실물경제로부터의 리스크 부각은 신용위험과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통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 루비니"헬리콥터로 미국인에 1000달러씩 뿌려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정정책이 동반되지 않은 통화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제되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공급망이 붕괴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효과가 제한적인 금리 인하만으로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 

비관적 경제전망으로 유명한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6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거대한 재정적 바주카포 없는 통화정책은 무력할 뿐”이라며 “오직 막대한 재정적자를 통해서만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수요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이날 증시 하락에 대해서도 “팬데믹은 계속 확산되고, 재정정책은 바주카포는커녕 작은 권총만도 못한데 통화정책이라는 쓸모없는 물총만 쏴대는 상황에서 10% 하락을 기대한 것은 너무 낙관적인 예측이었나”라고 비꼬며, “헬리콥터로 미국인들에게 1000달러씩 뿌리라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제안”이라고 말했다.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도 공격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6일 “연준은 실직자나 작은 기업체에 직접 도달할 정책 수단이 없다”며 통화정책의 한계를 인정했다. 파월 의장은 이어 “재정정책은 특별한 계층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연준은 재정정책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근본적 해결책은 코로나19 종식

일각에서는 경제위기의 해법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아닌 방역대책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경제침체의 원인인 코로나19의 조기 종식만이 실물경기 회복을 이끌 수 있으며, 재정·통화정책은 종료시점까지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진통제에 가깝다는 것.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은 지난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최고의 경기부양책은 코로나 진단 키트”라며 “검사를 원하는 미국인 대부분이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이 자택에 머무르면서 의료진의 도움을 요청한다면 공포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진단키트)을 대단히 효과적인 형태의 재정정책이라고 생각해보라”며 “이를 통해 막을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및 고용 차원의 손실을 고려하면, 진단키트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