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환불 등의 요구사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환불 등의 요구사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코로나19로 인해 각 대학들이 개강 일정을 연기하면서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학교 개강 연기에 따른 등록금 인하 건의”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단시간 내에 생산될 수밖에 없는 현재 특별 상황에 대한 ‘온라인 강의’는 평소 ‘오프라인 강의’ 수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 “기존보다 질적으로 강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로 이에 대해 일부 보상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코리아>는 현재 진행 중인 등록금 환불 논란과 관련해 대학·학생 측 입장과 실제 환불 가능성 등에 대해 짚어봤다. 

◇ 대학생 85% “등록금 환불 필요”

전국 27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6일까지 약 1만4785명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강 연기 및 온라인 수업 대체 과정에서 등록금 반환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의 응답자의 85.2%(매우 필요하다 62.7%, 필요하다 22.5%)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학생들이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이유는 개강 연기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대넷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각 대학들의 코로나19 대응조치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지목된 것은 ‘실기·실험·실습 등 온라인 대체가 불가한 수업 대안 미비(49.4%)’, ‘온라인 강의 대체로 인한 수업 부실(40.9%)’ 등이었다. 

실제 각 대학별로 페이스북에 개설된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에서는 다수의 학생들이 온라인 강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일부 대학의 대나무숲에는 소속 대학이 학생들에게 과거 강의 영상을 재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교수들에게 온라인 강의에 필요한 비용을 제때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서울 소재 A대학 대나무숲에는 한 누리꾼이 “일반대학에서는 대규모 강의를 단시간 내에 촬영할 만큼의 인력, 비용, 장비 등이 현재 마련되어 있지 않아, 강의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의 학습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없는 만큼, 등록금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B대학 소속이라고 밝힌 누리꾼은 소속 대학 대나무숲에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실습을 쌍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온라인 강의를 아무리 잘 준비해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환불을 못하겠다면 사용내역이라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학교 측에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등록금 환불, 법적 근거는

하지만 대학에 등록금 환불이나 감면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현행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 3조 3항은 “천재지변 등으로 인하여 등록금의 납입이 곤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등록금을 면제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로 돼 있어, 대학의 재량에 따라 감액할 수 있을 뿐 강제로 감액을 요구할 수 없다.

물론 등록금의 감액·면제가 강제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등록금 규칙 3조 5항은 “학교의 수업을 전학기(前學期) 또는 전월(前月)의 전기간(全期間)에 걸쳐 휴업한 경우에는 방학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학기 또는 해당 월의 등록금(입학금은 제외)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등록금 감액을 위한 최소한의 휴업 기간이 1개월이라는 것. 현재 대학들은 2주간 개강을 연기한 것이어서 등록금 감액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19로 인한 개강 연기에 따른 대학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19로 인한 개강 연기에 따른 대학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해외 대학도 등록금 환불 요구에 ‘진땀’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대학들도 등록금 환불 논란에서 예외는 아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다른 국가에 비해 학비가 비싸 등록금 환불 논란도 더욱 거세다. 

US뉴스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연간 평균 학비는 사립대의 경우 3만6801달러에 달한다. 주립대의 경우, 해당 지역 거주민에게 적용되는 ‘인스테이트’ 학비는 1만116달러로 2019년 한국 평균 등록금(약 1341만원)과 비슷한 수준. 하지만 비거주민이 내야 하는 ‘아웃스테이트’ 학비는 2만2577달러다. 

현재 약 200여개의 미국 대학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학사 일정을 연기했지만, 하버드를 비롯한 주요 대학 중 등록금 감면·환불 절차를 논의 중인 곳은 없다. 이유는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것. 미 뉴저지 소재 사립대인 시튼 홀 대학의 로버트 켈첸 교수는 14일(현지시간) 경제매체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등록금을 환불할 여력이 없다”며 “대학들은 교직원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등록금까지 환불할 추가 예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대학에서는 기숙사비·식비 등의 비용을 기간에 비례해 환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버드 칼리지는 지난 11일 학생들에게 기숙사 퇴거를 요청하면서 거주 기간에 따라 기숙사비 일부를 돌려줄 것이라고 공지했다. 매사추세츠주 소재 애머스트 칼리지 또한 최근 학생들에게 기숙사비 환불 절차를 안내했다.

◇ 적립금 쌓아두고도 연구기금은 ‘0원’

국내 대학 또한 기숙사비 환급을 논의하고 있지만 등록금 감면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미국 대학과 동일하다. 등록금 환불을 위한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 지난 10여 년간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대학이 이미 납부된 등록금까지 환불할 경우 재정 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학생들은 대학이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학생들을 위한 연구기금은 지출하지 않았다며, 재정 문제로 환불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현아 의원이 발표한 ‘2014~2018 사립대학 적립금 적립 및 인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연구기금을 전혀 인출하지 않은 대학이 무려 31곳에 달했다. 시설 개선을 위한 건축기금을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는 대학 또한 17곳이었다. 전반적으로 적립금 사용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여전히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아두는 관행이 남아있다는 것. 

실제 지난 2018년 대법원은 교육여건 부실을 이유로 등록금 환불 소송을 제기한 수원대 학생 42명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수원대에게 학생 1인당 30~90만원씩 총 258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만약, 학생들이 개강 연기 기간 동안 온라인 강의가 부실했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등록금을 환불 받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원대의 경우, 당시 적립금에 비해 교육비 환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실험실습비 및 학생지원비가 모두 대학평가 기준해 미달한 경우다. 다른 대학에서 환불 소송이 제기된다고 해도 학생들의 승소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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