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 민생당 공동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재난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현 민생당 공동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재난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 회복이 지연되자, 그에 대한 대책으로 ‘재난기본소득’이 거론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해보자는 것.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의 한계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오랜 기간 논의돼온 아이디어다. 하지만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논의되는 ‘재난기본소득’의 경우,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제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현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세금감면이나 금융지원 같은 기존의 대책보다는 좀 더 급진적인 단기 처방으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타개해보겠다는 강수인 셈. 재원 마련에 대한 의구심도 지급 기간이 한정된 만큼 기본소득에 비해 덜하다. 

하지만 재난기본소득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방대한 재원이 소모되더라도 지급된 현금이 다시 시장으로 유입돼 소비가 활성화되고 노동시장이 개선된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반면, 이러한 선순환이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의해 상쇄된다면 재난기본소득은 불필요한 논쟁거리에 불과하다. <이코리아>는 과거 해외에서 시도된 유사 정책들을 비교분석해 보고 재난기본소득이 정말 실효성 있는 코로나19 대책인지 검증했다.

◇ 포퓰리즘 논쟁 속에 시행된 일본의 ‘정액급부금’

자연재해나 전염병, 금융위기 등 국가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상황을 전 국민에 대한 현금 지급을 통해 호전시키려는 시도한 국가는 의외로 많다. 최근의 사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된 일본의 ‘정액급부금’ 제도를 들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09년 3월부터 전 세대를 대상으로 ‘정액급부금’을 지급한 바 있다. 금융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 경기부양책인 정액급부금 제도가 시행되면서, 지자체를 통해 국민 1인당 1만2000엔, 18세 이하 및 65세 이상인 경우 8000엔을 더해 2만엔이 지급됐다. 1인당 수급액은 많지 않지만, 가구 단위로 보면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예를 들어 미성년 자녀 2명과 부모로 구성된 4인 가족의 경우 매달 6만4000엔을 받게 되는 셈이다. 

현재 국내 상황과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 내에서도 정액급부금 지급 여부를 두고 격렬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야당인 민주당은 아소 타로 당시 일본 총리가 지지율 회복을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며, 정액급부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게다가 일본은 이미 과거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가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 앞서 일본 정부는 1999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쿠폰 형태로 된 ‘지역진흥권’을 지급했는데, 수급자 대부분이 생필품을 사는데 쿠폰을 먼저 사용하고 아낀 현금은 저축하는 모습을 보여 별다른 경제적 효과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권의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당시 미쓰비시도쿄UFJ 은행은 정액급부금이 지역진흥권과 비슷한 비율(약 30%)로 소비에 지출될 경우, 민간소비는 0.22%, 실질 GDP는 0.1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자료=일본 내각부
정액급부금 수급 1개월 전부터 2개월 후 나타난 소비증가효과. 자료=일본 내각부

◇ 일본식 재난기본소득, 실제 경제효과는?

그렇다면 정액급부금의 실제 효과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현금 지급이라는 급진적 대책이 경제성장률 등에 미친 효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정 수준 소비가 활성화된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201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액급부금으로 인한 소비증가효과는 총 누적수급액의 25% 수준이었다. 특히 아이나 노인이 있는 가구의 경우 각각 수급액의 40%, 37%의 소비 증가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수치가 유의미한 수준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일본 정부가 199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역진흥권이 없었다면 지출하지 않았을 금액”과 “지역진흥권이 계기가 돼 지출한 금액”을 더한 총액은 지역진흥권 누적수급액의 32%에 해당한다. 정액급부금에 대해서도 2010년 같은 설문조사가 시행됐는데, 결과는 32.8%로 지역진흥권과 비슷했다. 

이는 금융권 추산에 따르면 민간소비가 약 0.1~0.2% 증가하는 정도의 효과다. 실패 사례로 꼽히는 지역진흥권과 비슷한 정도라면, 정액급부금의 경제효과는 기대보다는 미미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 품목별로 보면, 생필품 위주로 소비된 지역진흥권과 달리 정액급부금은 여가에 많은 비중이 소비됐다. 일본 정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역진흥권의 경우 의류·신발이 32%로 가장 큰 지출 비중을 차지했으며, 가구·가사용품 13%, 교양·오락 12% 등의 순이었다. 반면, 정액급부금의 경우 교양·오락이 37.6%로 비중이 가장 컸으며, 그 뒤는 음식 11.7%, 가구·가사용품 10.0% 등의 순이었다.

◇ 현금 지급만으로는 효과 미미... 지자체·기업 노력 뒤따라야

이러한 차이는 정액급부금을 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지자체와 기업의 노력 때문으로 보인다. 정액급부금 지급 당시 일본의 지자체들은 구매 시 일정액을 추가해 지역 내 점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프리미엄 상품권을 발행해 정액급부금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용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백화점, 호텔, 여행사, 통신판매업체 등 서비스업에서도 정액급부금을 노린 할인행사 등을 시행했다. 

대한무역투자공사에 따르면, ‘정액급부금 특수’ 노린 마케팅으로 일부 기업들은 상당한 매출 상승효과를 봤다. 일본의 대형 슈퍼체인 ‘다이에’의 경우, 상품권 할인판매처를 확대하는 한편, 의류·생활용품 구매 시 기존보다 5~10배의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등 정액급부금 지급 개시에 맞춰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벌였다. 덕분에 할인행사 기간 중 화장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나 증가하는 등 눈에 띄는 효과를 거뒀다. 

이는 재난기본소득의 경제효과가 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지급된 현금을 어떻게 시장으로 회수할 것이냐에 대한 능동적인 고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현금 지급하고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기업이 나서서 소비 진작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단순히 기본소득 지급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지급된 현금을 어떻게 가계와 시장 사이에서 선순환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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