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유국들이 감산합의에 실패하며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합의에 실패하며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가 무산되며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의 원금 손실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유국 간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경우 자칫 제 2의 DLS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비(非)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둔화 및 석유 수요 감소 대응하기 위해 추가 감산안을 논의했으나,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OPEC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에 대한 보복 조치로 8일, 4월부터 증산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며 맞불을 놓았다는 것. 석유를 둘러산 주요 산유국 간의 ‘치킨게임’이 시작됐다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유가도 급락하기 시작했다. 

실제 9일 국제유가는 장중 30%가량 급락하며 걸프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24.6% 하락한 배럴당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는 24.1% 하락한 34.36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은 산업 분야나 투자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 투자자에게는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DLS는 채권이나 원자재, 환율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 해당 자산의 가격이 특정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면 약정된 수익을 얻는 상품이다. 

하지만 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간) 이하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에 진입하면 만기 시 최종 가격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DLS는 통상 6개월 단위로 조기상환을 진행한다. 기초자산 가격이 초기 가격에 비해 일정 비율을 초과할 경우 약속된 이자와 원금을 돌려주는 식이다. 지난해 7월 판매된 유가 연동 DLS의 경우, 6개월이 지난 1월 유가를 고려할 때 대부분 조기상환이 완료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8월 이후 판매된 DLS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WTI 가격은 배럴당 50~60달러 범위에서 움직였다. 상품마다 다르지만, 유가 연동 DLS의 일반적인 녹인 수준은 약 40~50%. 만약 유가가 25~30달러 이하로 하락할 경우, DLS 투자자들은 만기 시 유가에 따라 원금 일부를 잃게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유가와 연동된 DLS 미상환 잔액은 약 1조원 수준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9일 기준 WTI를 기초로 한 DLS 미상환 잔액은 9일 기준 6448억원, 브렌트유를 기초로 한 DLS 미상환 잔액은 4212억원 수준이다. 이 중 약 80% 이상이 녹인 수준 45~50%로 설정돼 있다. 

현재로서는 유가가 녹인배리어보다 소폭 높은 상태지만, 향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치킨게임’이 이어질 경우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두 산유국 간의 힘겨루기가 예상 밖으로 장기화한다면 손실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NH투자증권 김성수 연구원은 10일 “러시아는 이번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협상에서 ‘강한 러시아’ 스탠스에 중점을 두면서 단시일 내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라며 “과도한 양보는 내부 불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러시아는 당분간 저유가 환경을 감내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석유시장 주도권 확보를 도모할 전망”이라며 “오는 4월이 푸틴 대통령 집권 20주년인 점을 감안했을 때 최소 4월 말까지 기조 변화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하이투자증권 원민석 연구원 또한 9일 “2015~16년 국제유가 급락구간과는 다르게 국제유가의 반등 모멘텀이 더딜 것”이라며 “지난 2015년 국제유가 급락 이후 2016년초 반등의 기반에는 경기 회복이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는 당장 경기 회복 모멘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원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유가가 WTI 기준으로 이미 배럴 당 11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며 과거 20년간의 저점에 근접했기에 국제유가의 하방은 일정 부분 지지될 것”이라며, 유가가 추가적으로 급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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