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개나리.
길가에 핀 개나리.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아침 저녁 코 끝이 시릴 정도로 아직까지 추운 날씨지만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칼바람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낮의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질 만큼 봄은 성큼 다가왔다. 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우리나무가 바로 ‘개나리’이다.

‘개나리’는 노란색 꽃이 종처럼 달린 모양으로 영어로는 ‘Korean golden-bell’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공원이나 길가 울타리 주변에서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담장에 개나리를 심은 곳이 많았다. 그 시절에는 흐드러지게 핀 노란 개나리를 보면서 봄이 왔음을 실감하곤 했다.

개나리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나리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4갈래로 갈라진 개나리의 꽃 모양은 수많은 꽃송이가 대부분 비슷한 크기로 피어나기 때문에 흡사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샛노란 꽃이 너무나도 예쁘고 화사해서 외국에서 들여온 정원수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주변에서 오래전부터 보아오던 친숙함 때문에 흔한 나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개나리는 우리나라 산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나무이다. 산림과학원에서 멸종위기 수종의 보전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된 사실이다.

개나리가 우리나라 나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 자란다는 의미의 ‘koreana’가 붙어 있는 학명(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개나리는 현재 자연상태의 산에서는 자생집단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개나리의 자생집단이 점점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나리는 햇빛이 부족한 곳에서 잘 견디지 못하는 나무로 우리나라 숲이 울창해지며 생장에 적합한 지역에 점차 줄어들게 된 것이 개나리의 쇠퇴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개나리 새잎.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나리 새잎.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나리의 번식 특성 또한 쇠퇴를 가속화 한 원인으로 추정되는데, 길게 뻗은 가지를 땅으로 퍼뜨려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무성증식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나무들은 종자를 활용해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것과는 달리, 무성증식은 동일한 개체를 대량으로 만드는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렇게 증식된 개체는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하여 병해충과 환경변화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물은 이동능력이 있어 취약한 환경조건이 발생하면 좋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방법이 있지만, 식물은 한곳에 정착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취약한 환경조건에 견디면서 살아가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씨앗을 만든 식물들은 새, 곤충, 바람 등을 이용하여 주변 지역으로 멀리 퍼뜨려 개체를 이동시킬 수 있지만, 개나리처럼 무성증식을 하는 식물들은 근처에서만 증식하며,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좁은 지역에 모여서 자라는 특성으로 인해 취약한 환경이 닥치게 되면 군락 자체가 쉽게 쇠퇴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산개나리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산개나리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개나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특산수종으로 ‘산개나리’가 있다. 산개나리는 개나리와는 달리 잎 뒷면에 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개나리는 산에서 자라는 개나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북한산, 관악산 등 경기도 지역의 산에서 일부 개체가 살아남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보존이 필요한 산개나리의 유전다양성 복원을 위해 북한산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북한산 자생지 내에 유전적으로 매우 비슷한 산개나리 수십 개체가 모여 자라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나무들은 유전적으로 가까운 개체끼리 근친교배로 인해 약한 개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방안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매년 북한산 산개나리에서는 꽃이 피지만 열매는 맺히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 전국의 수목원에서 북한산에서 유래한 개체를 확보하여 DNA 분석을 실시하고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를 북한산 자생지에 식재하였다. 매년 모니터링을 통해 관찰한 결과, 자생지 내 식재한 나무들은 현재까지 활착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일부 개체는 열매를 맺은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귀한 우리나무 산개나리를 북한산 지역에서 오래도록 만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개나리, 산개나리와 더불어 ‘만리화’ 또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귀한 나무이다. ‘만리화’라는 이름은 향기가 만리까지 퍼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만리화는 향기가 전혀 없으며 이는 개나리, 산개나리도 마찬가지다. 만리화는 강원도와 경남지역의 석회암 지대나 암석지대에 주로 서식하고 있는데 개나리와 비슷한 꽃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줄기가 곧게 자라고 잎이 넓은 달걀 모양으로 개나리, 산개나리와는 다른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만리화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만리화 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우리나라에는 개나리, 산개나리, 만리화 등 우리의 봄을 매년 노랗게 물들여온 친숙한 꽃나무가 자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 나무 모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자라고 있는 특산수종으로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할 소중한 나무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봄, 길거리에서 노란색 꽃을 피우는 나무를 만난다면 각기 다른 독특한 특징으로 험한 환경에서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개나리 3형제에게 고마운 마음과 정다움을 맘껏 담아 보내주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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