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유학 중인 A씨는 최근 학회 참석 차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 A씨는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집주인으로부터 “나는 중국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을 다녀온 적이 없다”는 내용의 구구절절한 변명을 들어야 했다. 집주인은 아래층에 머무는 중국인 하숙생도 계속 미국에 머물러왔다며 몇 번이나 숙소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유학생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주인이 그동안 이웃들의 눈총에 얼마나 시달려 왔을지 생각하며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자신도 곧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라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다. 숙소를 나와 학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탄 A씨가 사레에 들려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A씨를 돌아본 것. 대부분의 승객은 이내 고개를 돌렸지만 뒷자리에 앉은 한 백인 남성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A씨를 계속 주시했고, A씨는 곧 불편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미국 뉴욕에서 한 아시아계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있다. 사진=뉴욕시경(NYPD) 공식 트위터 갈무리
미국 뉴욕에서 한 아시아계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있다. 사진=뉴욕시경(NYPD) 공식 트위터 갈무리

코로나19가 동아시아를 넘어 서유럽 및 북미권까지 확산되면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서구 사회에 잠재돼있던 인종차별이 코로나19에 대한 무지와 결합해 폭력적인 사태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 메사제로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중국인 B씨는 이탈리아 북부 카솔라의 한 주점에 잔돈을 바꾸기 위해 들어갔다가 직원에 의해 “당신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으니 들어올 수 없다”며 제지를 당했다. 이어 옆자리에 앉은 30대 남성이 탁자에 놓인 유리병을 들어 B씨의 머리를 가격했고, B씨는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게 됐다.

인종차별 테러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21일 CNN에 따르면, 태국계 미국인 지라프라파수케는 최근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남성에게 10분 동안 이유 없이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이 남성은 “모든 질병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에서 온 것들은 모두 역겹다”며 “중국인들은 참 똑똑해서 이것저것 개발할 수는 있지만, 자기 엉덩이조차 제대로 닦지 못한다”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심지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의료진들도 인종차별을 피해가지 못한다. 27일 호주 공영 ABC 방송에 따르면, 최근 호주 환자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의료진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빅토리아주 로열아동병원(RCH) 응급의료국 스튜어트 류에나 박사는 ABC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진 중 한 명이 인종 때문에 아동 환자의 부모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했다”며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의료진이 자기 아이에게 코로나19를 전염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해당 의료진은 그 밖에도 대기실에서 환자들이 아시아계로 보이는 사람들을 피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해 동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코로나19가 비교적 거리가 먼 호주, 북미, 유럽권까지 퍼지면서 감염에 대한 공포가 인종차별로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증후군) 사태 당시에도 아시아계 혐오 범죄가 증가한 바 있다. BBC에 따르면,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약 44명이 사스로 사망했고, 이로 인해 중국인 혐오 정서가 확산되면서 차이나타운은 약 80%의 영업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중국계 캐나다인 위원회 저스틴 콩 회장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입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생계가 막막해져 집까지 잃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며 “학교와 직장에서도 오명을 써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콩 회장은 이어 “증국인 공동체에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차별에 대한 두려움도 공존하고 있다”며 “공동체와 소규모 사업체,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CNN은 이같은 인종차별 테러가 코로나19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현재까지 미국 내 확진자는 총 60명(27일 기준)이다. 이중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 등 외국에서 감염된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 내 감염자는 총 15명으로 사망자는 아직 없다. 이들 또한 중국 우한에서 최근 귀국한 사람이나 그 가족과 접촉한 경우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됐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사태가 악화되자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7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코로나19는 중국과 동아시아 민족에 대한 주는 편견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차별과 싸우기 위해 유엔 회원국들이 최선을 다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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