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보상 8.2%에 불과
상태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보상 8.2%에 불과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0.02.18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대상 실태 첫 조사결과 발표에서 황전원(오른쪽 세번째)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이 인사말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대상 실태 첫 조사결과 발표에서 황전원(오른쪽 세번째)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이 인사말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 중 절반 이상이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작 기업으로부터 배상이나 보상을 받은 경우는 8.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역학회가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 의뢰로 지난해 6월 13일부터 12월 20일까지 전체 피해가구 4953가구 중 23.3%인 1152가구, 피해자 6590명 중 13.2%인 873명을 조사한 결과, 성인 피해자의 49.4%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11.0%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동·청소년 피해자 또한 자살을 생각한 경우가 15.4%, 시도한 경우가 4.4%로 나타났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건강 관련 삶의 질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55.1%가 정신건강에서 일반 아동·청소년의 하위 15퍼센타일(percentile, 100명 중 하위 15번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관계(73.4%), 자율성과 부모관계(62.3%) 또한 피해를 입지 않은 일반 아동·청소년보다 좋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정신건강 고위험에 내몰린 것은 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회적 책임을 성실하게 지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피해보상 대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한 채 보상을 미루고 있다. 청문회 당시 최 전 대표는 “상장사여서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즉답을 피했고, 채 부회장 또한 “피해자와 소통하고 있으나, 의견 차이가 있어 (보상이) 지연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한국역학회 조사에 따르면, 이번 조사대상 중 기업으로부터 배·보상을 받은 피해자는 전체 조사대상자의 8.2%에 불과했다. 피해가 발생한 지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 10명 중 1명도 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8월 27일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가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 27일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최창원 SK케미칼 전 대표가 피해자 및 가족들에게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해구제를 도와야 할 정부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조사대상 중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판정 결과가 타당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83.5%였다. 그 밖에도 ‘피해인정 질환이 너무 협소하다’(91.4%), ‘판정 기준이 타당하지 않다’(88.1%), ‘판정 관련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86.4%), ‘피해판정 위원의 공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74.1%) 등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 보니 아예 피해보상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다. 전체 조사대상 중 기업에 배·보상을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경우는 86.8%로, ‘정부가 아직 피해인정 판정을 해주지 않아서’(49.4%), ‘구제급여 대상자가 아니라서 소송을 제기해도 패소할 것 같아서’(20.7%) 등이 주된 포기 이유였다. 

불의의 피해에도 사과나 보상은커녕 정부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조사에 따르면, 성인 피해자 중 78.9%는 만성적 울분(지속적 울분+극심한 울분) 상태에 놓여있었다. 특히, 극심한 울분 비율은 성인 피해자 중 50.1%로 일반인(10.7%)의 다섯 배에 달했다. 한국역학회는 “사실상 동일 척도를 적용한 국내외 어느 문헌에서도 이토록 심각한 울분 현황은 보고된 바 없다”며 “우울증, 불안장애, 자살위험 등 노출 이후 드러난 정신건강 문제들이 간과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트라우마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역학회가 전수조사로 ‘예전의 일상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보는가?’를 질문한 결과, 피해자들의 일상회복이 불과 41%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점 척도로 측정한 성인 피해자의 행복감(4.05)과 삶의 질(3.99) 또한 서울시 평균 행복감(6.97)과 일반 국민 평균 삶의 질(6.33)에 비해 매우 낮았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대상 첫 조사결과 발표에서 피해자 서영철 씨가 발언을 마친 뒤 흡입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 씨는 피해 이후 폐 기능이 일반인의 2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사진=뉴시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대상 첫 조사결과 발표에서 피해자 서영철 씨가 발언을 마친 뒤 흡입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 씨는 피해 이후 폐 기능이 일반인의 2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2조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역학회가 심화조사 대상 198가구(생존자 128명, 사망자 59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치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추정한 결과, 질병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실(이환비용) 465억3700만원원을 비롯해 사망비용 275억3600만원 등을 포함해 총 759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1가구당 평균 비용 3억8000만원을 전체 피해가구 4953가구에 적용하면 총 1조8800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현재 피해자들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보상’과 ‘정부와 기업의 진정한 사과’를 삶의 우선적 목표로 꼽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가습기 살균제와 건강피해의 인과관계 추정 요건을 완화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가장 시급하다. 

하지만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은 “이번 연구에서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의 단초는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의 개정에 있는 만큼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