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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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4일(현지시간) SK이노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양사 간의 분쟁 첫 라운드가 LG화학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며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향후 분쟁 경과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자칫 미국 배터리시장 철수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SK이노가 LG화학과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관심이 집중된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ITC에 SK이노가 자사 인력 유출을 통해 2차전지 등 핵심기술을 빼갔다며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한 바 있다. 같은 해 8월 SK이노가 LG화학 등을 자사 배터리 기술특허 침해 혐의로 ITC에 제소하며 맞불을 놓자, LG화학은 11월 SK가 기술유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며 ITC에 조기패소를 요청하는 강수를 뒀다.

ITC가 지난 14일 SK이노의 ‘조기패소 판결’을 승인하는 예비 결정을 내리면서, 배터리 전쟁의 첫 전투는 LG화학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조기패소가 결정되면서 3월 초 예정된 변론 등의 절차는 생략되며, 오는 10월 5일 ITC 위원회의 최종 결정으로 이번 소송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SK이노에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첫 전투의 결과가 최종 결과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영업비밀 소송에서 ITC 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 중 최종결정이 뒤바뀐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특허소송에서도 ITC 행정판사의 예비결정 중 약 90%가 최종결정에서도 유지됐다. 즉, 이번 조기패소 결정은 오는 10월 최종 결정에서도 유지될 확률이 높으며, 이 경우 SK이노는 미국 내 배터리 사업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지난해 3월부터 SK이노는 약 1조9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9.8GWh급 1공장을 건설 중이며, 올해 초 1조원을 추가로 투자해 2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총 3조원 가량을 투자한 상황에서 최종 패소가 결정된다면 SK이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양사 간의 합의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사의 투자를 최대한 끌어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은 미국 정부가 SK이노의 최종 패소를 원하지 않기 때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고자 하는 트럼프 정부가 SK이노에 대해 관대한 결론이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 건은 결국 거부권을 가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책상 위에 올라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USTR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양사 간의 분쟁이 장기화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개입해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LG화학과 SK이노의 고객인 폭스바겐도 어느 한 쪽의 패배보다는 원만한 합의를 원하는 입장이다. 현재 폭스바겐은 유럽용 전기차 배터리 물량은 LG화학에, 북미 물량은 SK이노에 발주한 상태다. 이번 분쟁이 SK이노의 패소로 마무리되면 물량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만큼, 양사의 공동 고객인 폭스바겐이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장기적으로는 USTR의 거부권 행사, 미 정부 및 폭스바겐의 중재에 따른 합의로 시나리오가 흘러가 최악의 사태는 피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단기적으로 이번 ITC의 조기패소 판결은 SK이노에게 악재임은 틀림없다. NH투자증권 황유식 연구원은 17일 “SK이노베이션 2차전지 사업 속도는 계획대비 늦춰질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건설중인 조지아 배터리 1공장은 미국 사업 불확실성 증대로 건설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EV용 2차전지 수주 시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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