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선동열의 전성기 방어율’을 연상시키는 이 수치는 사실 2018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한국의 출산율이다. 점차 악화하는 저출산 문제로 최악의 미래가 그려지는 가운데, 결혼·주거·육아 등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저출산 논의 가운데 우리가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렇다면 저출산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일까. <이코리아>는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를 만나 그 대책을 들어봤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사진=임해원 기자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사진=임해원 기자

“이 법은 나라를 살리는 법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만난 이종락 목사에게 기자가 ‘비밀출산법’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이전에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이 발의됐고, 그 법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목사와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목사의 답변에는 남다른 확신이 담겨있었다. “위급한 생명을 직접 구하기 위한 이 법안이야말로 수 조원의 복지예산보다 더욱 확실한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소중한 아이들이 쓰레기처럼 아무 데나 버려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비밀출산법이 태어난 생명을 보호하고, 미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2월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곤경에 처한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해 영아 유기를 막고, 출생등록을 비롯해 산전·산후 보호 및 육아, 입양, 친권 회복 등 임신부터 양육까지 전 과정을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밀출산법’이라는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유기된 영아와 미혼모를 지원하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해온 이 목사의 경험에서 나왔다. 출생신고를 하면 원치 않는 임신·출산이 알려질까 두려워 극단적인 상황에서 산모들이 유기라는 선택으로 내몰리는 것을 지켜봐 온 이 목사는 이 법안이 영아유기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미혼모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러한 법안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베이비박스가 해온 일들이 그대로 법안이라는 형태가 된 셈이죠. 잘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 만든 법이라면 그 효과가 불확실하겠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구상한 법안인 만큼 영아 유기를 막는데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제도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는 1691년 오뗄디외병원(l’Hotel-Dieu)에서 여성의 비밀 출산을 허용하기 시작한 이래, 민법을 통해 산모가 익명성을 보장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 또한 지난 2008년 알래스카·네바다를 마지막으로 50개 주 모두가 ‘아기피난소법’(Safe Haven Law)을 받아들였다.

이 법안은 원치 않는 출산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산모의 책임을 면제하고 출산 시 익명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또한 2014년부터 ‘임산부에 대한 지원 강화 및 비밀출산 규제에 관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가에서 모든 사람이 비밀출산법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해당 국가에서는 여전히 비밀출산법에 대해 찬반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비밀출산법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친생부모가 아닌 의료기관 및 국가가 출생신고의 의무를 지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도입해 ‘투명인간’이 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한 뒤에, 보완책으로 ‘비밀출산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온건한 비판도 있지만, 영아 유기가 늘어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친부모의 양육을 지원하기보다 입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거나, 성장한 아이가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는 문제제기도 중요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을 ‘기우’로 치부하기 어렵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법안도 최대한 이러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부가 조항을 두고 있다. 비밀출산을 돕는 상담기관은 친부모 대신 가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의무를 지며, 아이의 알 권리를 위해 최대한 부모의 정보를 요청해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또한, 입양절차에 앞서 친부모가 스스로 영아를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 같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비밀출산법이 만능은 아니다. 출생신고의 의무를 개인에게서 상담기관으로 옮겼지만, 그것은 비밀출산 상담기관을 찾아온 이들을 위한 것이다. 비밀출산법이 모든 아이들이 잊혀지지 않고 국민으로서 기록될 권리를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한 아이가 친부모를 찾을 경우를 대비해 친부모의 정보를 보관하도록 했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일 뿐 의무적인 규정은 아니다.

상담기관·보호기관과 그 종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도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발의된 법안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로 상담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요건은 담겨있지 않다. 또한, 현재 유기영아 보호시설은 대부분 종교단체나 종교법인의 선의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에게 국가가 지정한 상담기관의 역할을 계속 맡길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다만 이러한 단점이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한 논의를 “틈새가 많다”며 외면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발 또한 ‘비밀출산법’이 제안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과도한 비난에 가깝다. 

연도별 보호조치 아동 발생 원인 중 '유기'의 비중(1997~2018년). 자료=국가통계포털
연도별 보호조치 아동 발생 원인 중 '유기'의 비중(1997~2018년). 자료=국가통계포털

비밀출산법은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원인이 아니라, 엄청난 정치·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이 버려지는 우리 사회의 결과물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717명에서 2010년 191명까지 줄어들었던 유기영아 수는 2018년 320명까지 다시 늘어났다. 매년 발생하는 보호대상아동 중 유기된 영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8.2%로 오히려 이전보다 높아졌다.

한부모를 지원하는 제도도 확충되고 있고, 국가 기록에서 친모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도 갖춰지고 있지만 여전히 유기 영아의 비중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가정’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터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제도 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닌 경우 사회적 비난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비혼출산율 1.9%(2014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OECD 회원국 평균이 약 40%임을 고려하면 한국은 사실상 비혼 출산이 금지되는 사회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상 가족’ 외부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비밀출산법은 이런 사회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산모와 아이를 구하기 위한 응급조치로서 제안된 것이다. 뼈를 다시 붙이고 상처를 봉합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는 것 뿐이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습니까. 화장실이나 자취방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출산한 어린 여성들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보호시설까지 데리고 왔는데, 그걸 ‘버렸다’고 표현해서는 안됩니다. 그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지켜진’ 아이들입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찾은 미혼모들은 사력을 다해 아이를 지킨 영웅들이라며, 이들을 위로하고 칭찬하기는커녕 비난하고 밀어내는 사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비혼출산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베이비박스로 내몰리는 여성들은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은 산모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고, 그런 이들을 돕기 위해 법안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한 우리 사회다. 어떤 형태의 출산도 모두 축하하고 환영해주지 않는 사회라면 저출산을 걱정할 자격도, 비밀출산법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 비밀출산법은 우리 사회의 역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한 응급처치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비밀출산법을 통해 시작될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다.

“한밤중에 술에 취해 시설로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 어딨냐며 우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졸업이든 취직이든, 자신이 준비될 때까지만 아이를 맡아달라며 강한 친권 회복 의지를 보이는 엄마들도 많아요” 

주사랑공동체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10~2020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1697명의 아이 중 145명(8.5%)가 원가정으로 돌아갔다. 지금 비혼출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의 수도,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비율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목사는 강조한다.

“국회의원들을 만나보면 자기들이 다 이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해요. 하지만 계속 관심을 보여주는 정치인은 드물죠. 정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정부도 비밀출산법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을 텐데, 왜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비밀출산법은 현재 2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이 목사는 오는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국회 임기 내 비밀출산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비밀출산법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것은 단지 국회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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