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외보존원으로 보전되고 있는 눈측백.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현지외보존원으로 보전되고 있는 눈측백.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겨울은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는 계절이지만 어째서인지 올해는 눈 구경이 쉽지 않은 듯하다. 어른이 되면서 쌓이는 눈이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높은 산에서 찬바람을 견디는 아고산지역의 나무들을 생각하면 눈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에 ‘눈’이 들어가는 나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고산지역 침엽수종인 ‘눈측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눈측백은 세계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중국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수종으로, 눈측백의 학명(Thuja koraiensis Nakai)에 붙은‘koraiensis’라는 이름만 봐도 우리나라가 주요 분포지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럼 ‘눈측백’이란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사실, 눈측백의 ‘눈’은 겨울에 내리는 ‘눈’이 아니다. 측백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줄기를 땅에 붙이고 누워 자라는 모습에서 붙은 이름인 ‘누운측백나무’가 변하여 눈측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눈측백이 땅에 누워 자라는 모습은 오랜 기간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눈측백은 해발 750m 이상의 산 정상부의 바위지대에 주로 자라는데 산 정상부는 사시사철 강한 바람이 불어 키가 큰 나무들은 쉽게 부러지고 만다. 하지만 눈측백은 가지가 땅에 누워서 자라며 잎과 줄기가 부드러워 강한 바람에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지난번 소개했던 눈잣나무와 같은 방식으로 높은 산에서 견디며 살아남은 것이다. 

필자가 눈측백을 처음 만난 곳은 강원도 태백의 장산이었다. 장산은 주목, 분비나무 등 다양한 멸종위기 수종이 분포하는 곳으로 산림청에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지역이다. 숲이 빽빽하게 우거진 분비나무 군락을 헤치고 들어가다 보니 바위가 많은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흙은 거의 없고 거대한 바위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마치 바위에 옷을 입힌 것처럼 자라고 있던 나무가 바로 눈측백이었다. 눈측백은 나무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어 나무가 바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 흡사 잔디나 이불처럼 보였다. 눈측백은 대부분 땅에 누워 자라는 형태이지만, 바위지대 아래쪽과 같이 영양분이 많고 토양이 발달한 곳에서는 소나무처럼 위로 곧게 솟은 형태로도 자라났다. 아마도 좋은 환경에서는 다른 나무들과의 햇빛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때로 키가 큰 형태로 자라는 게 아닐까 싶다.

눈측백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눈측백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눈측백과 닮은 나무로는 ‘측백나무’와 ‘서양측백나무’가 있다. 이 중 ‘측백나무’는 울타리로 많이 심는 나무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측백나무는 대구, 안동, 단양 등의 석회암지대의 비탈면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 유명하다. 도동 측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지역에서 자라는 측백나무 숲으로 수백 년 된 측백나무 천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대구 10경’중 하나로 불리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처럼 측백나무는 여러 그루가 숲을 이루어 자라는 동시에 다른 나무들은 쉽게 자랄 수 없는 석회암 지역의 절벽 지대에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62호 충북 단양 영천리 측백나무 숲, 제114호 경북 영양 감천리 측백나무 숲 등 한 그루가 아닌 숲으로 보호·관리되는 귀한 나무이다. 

서양측백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서양측백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측백나무와 비슷한 모양새로 주로 조경수로 활용되는 ‘서양측백나무’도 있다. 서양측백나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가 자생지가 아니라 북미가 원산지다. 서양측백나무는 원뿔모양의 수형이 아름다워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조경수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 나무인 눈측백은 자생수종인 측백나무와 유전적으로 비슷할 것 같지만, 사실 북미에서 들여온 서양측백나무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계란 모양의 열매와 날개가 있는 씨앗은 두 나무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눈측백은 땅에 누워 자라는 나무 모양과 도화지처럼 하얀 잎 뒷면의 색깔을 통해 서양측백나무와 구분할 수 있다. 한편, 측백나무의 열매는 돌기가 있는 도깨비 모양이고 종자는 작은 잣 모양으로 날개가 없으며 잎 뒷면이 연한 녹색이기 때문에 이 둘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도깨비모양의 측백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도깨비모양의 측백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눈측백은 설악산, 태백산, 화악산 등 험한 산의 고지대에 모여 자라는 나무로 최근 기후변화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놓인 소중한 우리나무 중 하나이다. 산 정상이라는 험한 곳에서 오랜 세월 강인하게 견뎌 왔지만 최근 분포 지역이 줄어들고 있어 보전이 절실하다. 소중한 우리나무를 지키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눈측백을 멸종위기 7대 고산 침엽수종으로 지정하여 보전과 복원에 힘쓰고 있다. 필자도 2010년부터 눈측백 줄기를 이용한 꺾꽂이 증식 방법을 이용하여 현지에 있는 개체들의 유전다양성을 평가하고 무성 증식을 통해 현지 외 보존원을 조성하여 관리하는 등 우리나라 눈측백의 보존과 복전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높은 산에 자라는 눈측백, 험한 석회암 절벽 지대에 자라는 측백나무, 비록 원산지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서양측백나무 등 3가지 종류의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두 우리가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우리나무이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특징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측백나무 3형제에게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보내주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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