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페이스북 갈무리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실질 국내총소득(GDI)의 연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질 GDI하락을 두고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실패를 입증한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실질 GDI라는 지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오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2019년 4/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실질 GDI는 전년 대비 0.4% 감소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2.0%)을 하회했다.

한은은 “반도체 가격 하락 등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를 실질 GDI 하락 원인으로 제시했으나, 주요 국내 언론의 진단은 달랐다.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GDI가 하락했다는 것은, 기업과 가계의 ‘소득’ 여건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는 것. 결국,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 실패로 인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민간 소비가 위축된 것이 GDI 하락의 핵심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22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GDI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했다는 것으로, 민간의 소득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이라며 “노동시장에 개입해서 임금 소득을 늘려 가계의 소득기반을 확충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반면, 정부는 실질 GDI 하락의 원인을 정책실패에서 찾는 것은 지표에 대한 오해가 불러온 잘못된 진단이라는 입장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해 실질 GDI가 늘지 못했다는 점(△0.4%)은 분명 아픈 부분이다. 그러나 그 원인과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실질 GDI가 감소한 것은 국내 생산활동 및 부가가치(GDP)는 늘었으나(+2.0%)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무역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실질 GDI는 국내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실질 GDP에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익을 더해 산출한다. 

교역조건은 두 나라 사이에 거래되는 재화의 가격 비율(수출 가격지수/수입 가격지수)로, 1단위의 상품을 수출해 번 외화로 수입 가능한 상품의 단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 반도체 1개를 판 돈으로 수입해올 수 있는 재화의 양이 늘어나지만(교역조건 개선), 하락하면 줄어든다.(교역조건 악화) 수입재의 가격이 변동하는 경우는 반대로 적용된다.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하는 이유는 GDP가 생산활동의 결과를 집약해 보여주지만 ‘체감경기’ 지표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교역조건을 반영해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GDI는 체감경기를 더 잘 보여준다. 

자료=기획재정부
자료=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GDP는 1844조원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실질 무역손익이 40조3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GDI는 전년 대비 0.4% 감소한 1803조7000억원에 머물렀다. 지난해 실질 무역손익은 문재인 정부 역대 최저치로 전년(3조3000억원) 대비 43조6000억원 감소한 수치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지난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8Gb 디램(Dram) 개당 가격은 2018년 7.9달러에서 지난해 3.7달러로 무려 53.5%나 폭락했다. 지난해 수출물가지수 또한 3.3% 하락했으며, 특히 반도체의 경우 27.1%나 감소했다.

김 차관은 “이런 교역조건의 악화는 정부정책 영역의 바깥에 있는 변수로 정부의 분배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며 “사정이 이러한데 작년 실질 GDI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것을 분배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김 차관은 이어 “수출감소(△8.0%) 등으로 우리경제가 어려웠던 2015년에는 다행히 국제유가가 큰 폭 하락하며 작년과 반대로 실질 GDP 성장률(2.8%) 보다 실질 GDI 증가율이 두 배 이상(6.5%) 높았다”며 “그렇다고 그때 우리가 분배정책의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흥분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교역조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높은 GDP 성장률 덕분에 GDI 하락을 면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1년 실질 무역손익은 73조7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3.7%의 높은 GDP 성장률로 인해 GDI 또한 ‘플러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악화 및 글로벌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교역조건이 악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1년 만의 ‘마이너스’ GDI 증가율을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철회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반면, “정부정책은 문제없다고 확신하기”에는 저조한 GDP 성장률이 걸린다. ‘소주성’ 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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