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 군락.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잣나무 군락.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겨울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고소한 잣의 제철이다. 새하얀 잣은 잣나무의 열매로 고급과수로 불리는 귀한 산림자원이다. 잣은 예로부터 수정과나 한방차에 띄우거나 죽을 끓여 먹기도 하는 등 우리 전통음식 문화와 함께 해왔다. 이렇듯 잣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정작 잣이 열리는 나무, 잣나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핏 보면 소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우리 주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탓이다. 

잣나무와 소나무는 매우 가까운 친척 관계로 외향도 무척 비슷하다. 뾰족한 바늘잎과 원뿔형의 나무모양을 보면 두 나무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잣나무는 잎이 5개씩, 소나무는 잎이 2개씩 달려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소나무는 붉은빛이 도는 나무껍질을 가진 반면 잣나무는 회갈색을 띠는 것도 차이가 있다. 이 구분법은 매우 정확하지만 나무 가까이서 확인해야만 알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멀리 떨어진 산에 있는 잣나무와 소나무를 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필자가 산림자원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백운산에서 잣나무 숲을 연구하던 선배가 알려준 구분법에 의하면, 소나무는 멀리서 보면 청아한 연둣빛이 돌지만 잣나무는 녹색 빛에 뿌연 느낌이 있다고 했다. 약간 탁하고 하얗게 바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건너편 산에 자라는 두 나무를 같이 놓고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잣나무 잎에는 소나무에는 없는 백색의 기공조선이 뚜렷하게 발달해 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흰색 빛으로 보인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잣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잣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우리 주변에서는 종종 조경수로 심은 잣나무를 볼 수 있는데 원래 자생 잣나무는 대표적인 아고산 침엽수종으로 해발 1,000m 이상 정상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나무다. 눈잣나무나 섬잣나무는 잣나무보다 더 찾아보기 힘든 수종으로 이 두 나무는 잣나무와 유전적으로는 가깝지만 멀리 떨어진 특별한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다.

먼저 눈잣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설악산 꼭대기인 대청봉 부근이다. 대청봉(해발 1,708m)의 중청대피소로 이어지는 등산로 양쪽에는 푹신한 방석처럼 고운 연둣빛을 자랑하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언뜻 보면 잣나무 같지만 잎이 짧고 특히 구과의 크기가 솔방울 정도로 매우 작은 이 나무가 바로 눈잣나무이다.

눈잣나무는 산 정상부의 강한 바람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에 붙어 자라고 있다. 약 800그루 정도가 대청봉 꼭대기에만 모여 있어 최근 기후변화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무 중 하나이다. 매년 구과가 달리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잣까마귀 또는 설치류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현재는 자생지에서 어린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림청에서는 눈잣나무를 멸종위기 7대 고산 침엽수종으로 지정하여 보존과 복원에 힘쓰고 있다. 필자도 2011년부터 대청봉 눈잣나무의 보존을 위해 종자를 안정적으로 수집하는 방법, 어린나무를 키우는 방법, 현장에 복원하는 방법 등의 연구와 성과를 바탕으로 눈잣나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잣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잣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섬잣나무는 공원이나 건물에서 조경용으로 심는 경우가 많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자생 섬잣나무 역시 우리나라의 먼 동쪽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이다. 울릉도 서쪽 태하령에는 천연기념물 제50호인 섬잣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필자가 2012년 태하령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자생 섬잣나무는 매우 놀라운 모습이었다. 이제껏 알고 있던 섬잣나무는 작은 키에 바늘잎이 짧고 아담한 모양이었는데, 울릉도에서 만난 자생 섬잣나무는 나무 높이만 15m가 넘고 통직한 나무줄기가 매우 우람한 모습이었다. 자생 섬잣나무가 흔히 봐오던 조경용 섬잣나무와 외형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마도 후자가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이어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잣나무와 눈잣나무, 섬잣나무. 이 3가지 종류의 잣나무가 자라고 있다. 모두 험하고 외진 곳에서도 기특하게 살아남은 소중한 우리나무이다. 기후변화 등 자생지의 환경 악화로 인해 점차 우리 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나무들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아닐까. 설악산 대청봉 또는 울릉도 태하령을 방문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잣나무 3형제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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