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ghpark@korea.ac.kr
'북한 패망론'에 근거한 '통일 대박론'은 허상이다. 현실은 김일성이 북한에 김씨 왕조를 설립한 지 70년이 되었다.

이제 3대 왕 김정은은 30대 초반이다. 김정은과 더불어 안정적으로 유기체를 형성하고 있는 주류사회가 기득권을 포기할 리 없다. 인지상정이다. 위협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2인자 장성택의 숙청으로 김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경제는 많이 뒤쳐져 있으나 군사력은 강하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에서 보듯이 재래식 무기도 상당한 수준인데 비대칭 무기마저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방공망은 북한의 초보적인 무인정찰기도 감지하지 못하는 더욱 초보적인 수준이다. 월남이 월맹에 패망하였듯이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보다 군사력이 좌우한다.

또한, 다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국가 간의 예의에도 어긋난다. 심지어 그들의 무력도발을 자극할 수 있다. 더욱이 김씨 왕조가 무너진다면 정권이 바뀌는 것이지 북한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이 실각하여도 북한은 독립국가임으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군대도 북한의 동의 없이 진주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

그리고 북한의 방대한 자원으로 통일 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라면 많은 자원의 권리가 이미 원조의 대가로 중국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통일은 신라ㆍ백제ㆍ고구려의 삼국시대부터 이어 온 민족적 담론이다. 시의적절하게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들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이어 '통일은 대박'이라는 메시지를 역설하고 있다.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면 상호 윈ㆍ윈 기반 하에 통일 로드맵을 마련하여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적화통일을, 대한민국이 ‘북한 패망’을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통일은 없다. 어느 한쪽으로든지 흡수통일이 되면 한 쪽에서는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피의 숙청이 예상되서 어느 쪽도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통일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므로 장기적인 통일 로드맵이 필요하며 각 단계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동안은 확고한 대북 안보가 요구된다.

첫 단계는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정서를 순화시켜야 한다. 6ㆍ25 때 우리 민족이 민도가 낮아서 서로 원수처럼 죽여야 사는 줄 알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더불어 휴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맺어 공식적으로 전쟁상태를 종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산가족의 상봉을 자유로이 허용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분단 이후 형성된 서로의 정신ㆍ문화ㆍ사회적인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반개혁ㆍ개방, 수령 세습 독재사회 등에 대하여 동등한 통일 파트너로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통일에 더 다가설 수 있다.

다음은 경제협력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면 유럽연합의 유로존처럼 단일 화폐 존 구축이 가능하다. 다음은 유럽의 나토처럼 군사협력이고, 다음 정치ㆍ외교의 단일화가 이루어지고 UN에 단일국가로 가입하면 드디어 통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 로드맵의 실현에는 30년 길면 기약 없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민간기업의 M&A에도 양자가 모두 득이 안 되면 합의가 안 되는데 하물며 국가 간의 통합인데 얼마나 많은 이견의 조정과 시간이 필요할까?

서기 676년 신라가 당나라의 군사지원을 받는 대가로 고구려를 양도한 후 고구려의 대부분은 중국이 되었다. 더욱이 중국은 '동북공정' 논리를 장기간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고구려ㆍ발해를 중국의 과거 변방국가로 역사적 설정을 하였고 북한도 그 일부로 주장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이 망하면 중국으로 통일될 수 있다. 외세에 의존한 통일은 북한을 나눠가짐으로써 제2의 통일신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도 과거, 현재, 미래의 민족적, 민중적 역사를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의 자주적인 통일 논리와 전략 그리고 구체적 방법론과 로드맵을 창조한 후 통일 당사자 간의 통일 협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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