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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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게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다. 벌써부터 알록달록한 장식으로 거리가 물드는 이맘때,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나무가 있다. 바로 구상나무이다.

구상나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대표적인 우리나무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는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가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되어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트리로 활용되어왔다. 우리나라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더 널리 활용되고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한 우리 구상나무의 더 안타까운 현실은 구상나무가 점차 우리 땅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구상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아고산 침엽수종이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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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구상나무와 같이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기후가 점점 따뜻해지고 강수량이 불규칙해지면서 아고산에 자라는 침엽수종의 나무들의 생육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경쟁상대인 활엽수들이 점점 높은 지대로 서식지를 넓혀가면서 아고산의 침엽수종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약 25%의 침엽수종이 모습을 감췄으며 특히 구상나무의 경우 이보다 더 많은 33%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우리나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상황에서 산림청은 2016년도 멸종위기 침엽수종 보전·복원 대책을 수립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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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제주도의 한라산과 한반도의 지리산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제주도의 구상나무는 거센 바람과 많은 눈보라에서 살아남아서인지 수고가 작고 아담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

2010년도 이후 언론을 통해 제주도의 구상나무들이 집단으로 고사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집단 고사의 원인은 겨울철 기온 상승으로 봄철 눈이 녹는 시기가 빨라져서 생장이 시작되는 봄에 토양 수분이 부족해 발생하는 피해와 여름과 가을철 태풍에 의한 피해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구상나무가 죽어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어린나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한 숲은 어른나무가 죽으면서 생겨난 공간에 후대인 어린나무가 자라면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상나무의 경우 고사하는 어른나무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도 그 밑에서 어린나무가 좀처럼 자라나지 않고, 그마저도 조릿대 또는 다른 활엽수종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점차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라산과 지리산과 같은 큰 규모의 구상나무 숲뿐만 아니라 어른나무가 50그루 미만인 작은 규모의 숲 또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거창의 금원산의 경우 1ha 이하 규모의 구상나무숲에 어른나무가 단 20여 그루만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잔존집단이다.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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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가 산 정상부 암석 지역에 일부 모여서 자라고 있을 뿐이고 숲 바닥에서 자라나는 어린나무들도 몇 그루 남지 않아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다. 다행히도 올해 산림청과 금원산 산림자원관리소가 공동으로 금원산의 구상나무 숲의 유전 다양성을 고려한 복원시험지를 조성하는 등 우리 땅의 구상나무 숲을 안정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구상나무 형제인 분비나무는 구상나무와 다르게 솔방울 모양 구과의 실편이 아래로 젖혀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한 구상나무는 한반도의 지리산 이남에 서식하는데 비해 분비나무는 설악산, 오대산 등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덕유산 이북 지역에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분비나무도 구상나무와 마찬가지로 최근의 기후변화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설악산 대청봉 지역에서 하얗게 고사한 분비나무 숲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구상나무와 마찬가지로 분비나무의 보전을 위한 발 빠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구상나무 3형제 중 마지막인 전나무는 다행히도 비교적 건강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가 끝이 갈라지는 바늘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전나무는 끝이 뾰족한 잎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큰 솔방울 모양의 구과에 실편이 발달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는 전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숲길 좌우로 빼곡하게 자라있어 이렇게 거대한 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진안 천황사에는 천연기념물 제495호로 지정된 400살도 넘은 전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 둘레 5.7m, 높이가 35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그 앞에 서면 경외감마저 들 정도이다.

이처럼 전나무는 우리나라의 사찰 주변에서 잘 보전되며 사랑받아 왔다.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전나무속(Abies) 나무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에서 전나무 역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전나무속에 해당하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전나무 3형제가 자라고 있다. 모두 춥고 험한 산의 정상부에서 살아남은 소중한 우리나무이다.

최근의 기후변화로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나무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시급한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이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또는 제주도의 한라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험한 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구상나무 3형제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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