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뉴시스>류형근 기자 = 타국 출신의 부인을 아이가 보는 앞에서 폭행한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전남 영암경찰서는 영상속 남편 A(3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19.07.08 (사진=페이스북 영상 캡처) photo@newsis.com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코리아>가 국내 이주여성의 피해 실태를 취재한 결과 매년 2명 꼴로 살해까지 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할머니가 그랬어. 이 마을 터가 잘못됐는지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들이 왔다가, 죄다 다 떠난다고.”

“먹고만 살려고 왔겠어요? 더 잘 살려고 왔지.”

이주여성의 삶을 다룬 연극 ‘텍사스 고모’에 나오는 상징적인 대사이다.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은 희망을 안고 한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그 절망은 가정폭력에서 비롯된다.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려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꺼리는 실정이다.  

2017년 6월 국가인권위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920명 응답자 중 42.1%가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38.0%(147명)은 폭력 위협을 당했으며, 19.9%는 흉기로 협박당했다.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해도 이주여성 3명 중 1명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더 놀라운 건  2007년~2017년 10년간 결혼이주여성 살해 사건은 19건이나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밖에도 언론 보도나 이주여성 지원 기관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이주여성 매년 2명 꼴로 살해당해 

이주여성의 피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6년 국제결혼을 통해 경북 청도에 살던 베트남 여성 A씨가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은 43세 정신장애자로, A씨는 결혼할 때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결혼하고 보니 이혼한 중국출신 전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다. A씨는 주변에서 친엄마인 줄 알 정도로 딸을 잘 키우며 살았지만 결국 참변을 당했다. 

한국인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임신 7개월의 캄보디아인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아내 B씨는 2014년 충남 천안 부근 경부고속도로에서  7개월 된 태아와 함께 현장에서 숨졌다. 운전석에 있던 남편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처음에는 단순 졸음운전 사고로 처리되려 했다. 하지만 아내 B씨 이름으로 26개의 보험이 가입, 사망보험금이 95억 원에 달하자 보험사기가 의심돼 수사가 재개됐다. B씨의 혈액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되었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남편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남편의 폭력으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한 조선족 출신 여성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례다. C씨는 무직인 남편을 대신해 시장 닭 집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C씨는 결혼생활 10년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했다. 이혼을 결심한 C씨는 언니 집으로 열흘간 대피했다. 그러자 남편은 어린 자녀들이 울고 있는 사진 등을 계속 보내며 집에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C씨는 어린 자녀들 생각에 귀가했다. 하지만 그 사이 남편은 C씨의 주민등록을 말소시켜버렸다. C씨가 일한 가게 주인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수시로 C씨의 직장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등 의처증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후 남편의 무차별 폭력으로 C씨는 뇌사상태에 빠졌고 4일만에 사망했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작년 12월에도 경남 양산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이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D씨는 건강이 안 좋은 남편을 대신해 한달 120만원 수입으로 어렵게 생계를 책임져 왔다. D씨는 결혼생활 7년간 한 번도 친정에 방문한 적이 없으며 다문화 가족지원센터를 이용한 기록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남편이 이주여성을 통제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부부 싸움 중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주변의 친구도 동료도 없었기에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 이외에 시아버지가 이주여성 며느리를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 한국인 시아버지는 “용돈 안 주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라는 이유로 베트남인 며느리를 살해했다. 그는 전날 밤 술을 마시고 귀가한 후 며느리와 말다툼 끝에 홧김에 흉기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배우자에 종속된 현 제도가 인권유린 양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묻는다. “연이어 살해당하는 이주여성의 죽음 앞에서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라고. 또한 “결혼이주여성은 제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며 현 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결혼이주여성이 인권, 자유, 평등을 최대한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에 들어서야 모국어로 상담, 통번역이 지원되는 상담소가 1곳 신설됐고 4곳이 더 신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국내 이주여성이 264.681명(2017년 11월 기준)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이주여성이 폭력과 차별, 억압과 통제 속에서 사망까지 이르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폭력을 당해 사망해도 장례조차 치르기 어려운게  현실이다"며 “범죄 피해에 대한 보상,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게끔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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