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일본이 반도체 생산이 필요한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하자, 외신들이 트럼프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과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3개 물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한일을 제외한 해외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개 이번 사태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설명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외신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뒤로는 수출규제를 강화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이율배반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지금이야말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없는 무역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때”라며 “무역제한 조치를 주고 받는 것은 어느 나라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또한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은 무역과 혁신”,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는 평화와 번영의 초석” 등 자유무역을 강조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고, G20 성명서에도 “자유롭고 공평하며 무차별적이고 투명성이 있는 무역과 투자 환경”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G20 회의가 끝난 지 이틀 뒤 나온 무역제한 조치는 아베 총리의 이전 발언과는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자유무역의 옹호자 일본이 트럼프의 전술을 모방했다”며 “일본 내부에서도 한국과의 갈등 때문에 글로벌 기술 공급망에 타격을 입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대신 보호주의 정책을 펼쳐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빗대,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자유무역에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한 셈이다.

미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2일, 이번 수출규제의 배경에는 한일 간의 오랜 역사갈등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일본의 의구심이 놓여 있다고 전했다. 디플로맷은 “한국은 지난 1990~2000대 들어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를 대부분 정리했지만, 지난 10년간 여전히 혐의가 제기돼왔다”며 “이러한 문제가 기술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일본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플로맷은 이어 “어느 쪽이 이유든, 일본은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삼아 외교·경제 분쟁에서 협상력을 강화하는 트럼프 정부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며 WSJ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수출규제가 트럼프 정부의 보호주의와 맞닿아있음을 지적했다. 디플로맷은 “단기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런 조치는 세계 경제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미중 무역전쟁과 더불어, 한일 간의 갈등은 글로벌 공급망과 국제적 기술경제 전반에 엄청난 불확실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 또한 1일 일본의 이번 조치와 트럼프 정부 외교전략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데보라 엘름 아시아무역센터 상임이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2017년 취임 이후 무역전쟁에서 관세위협과 수출 규제를 활용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닮았다”며 이번 수출규제를 “무역체제 붕괴의 또 다른 징후”라고 표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어 일본이 수출규제로 인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노무라 홀딩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수출 규제가 지속된다면, 규제 품목의 국내 생산능력 발전을 서두르도록 한국을 자극하게 될 수 있다”며 “일본 정부가 현 상황을 질질 끌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