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책을 볼 때마다 항상 그의 부지런함에 감탄한다. 수많은 사례들을 재료로 늘어놓으며 독자를 사고실험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쯤 등장하여 단숨에 가지를 휘어잡는 그 능수능란한 재주. 책장을 넘기다 보면 머리가 뒤죽박죽 엉키다가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도 이러한 샌델의 전매특허가 여실히 드러난다. 암표 거래, 우선 탑승권, 코뿔소 사냥권, 대리 사과 서비스, 그리고 생명보험에 이르기까지. 만약 이중 단 하나만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대리 줄서기 서비스를 꼽고 싶다. 

가끔 언론에서 이색 직업으로 소개되기도 하는 대리 줄서기 서비스는 말 그대로 줄을 대신 서주는 것이다. 대리 줄서기 회사들은 대게 퇴직자나 노숙자를 고용하고, 이들은 날씨가 좋든 나쁘든, 시간이 적게 걸리든 많이 걸리든 묵묵히 줄을 선다. 

흥미롭게도 이 서비스의 주요 고객은 바로 기업 로비스트들이다. 기민한 로비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객들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만한 법안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의회에서 법안에 관한 공청회를 열면서 방청석 일부는 언론에게 제공하고 나머지는 선착순으로 분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 하루 전, 심지어 그보다도 일찍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로비스트들은 바쁘기 때문에 시간을 길거리에서 허비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바로 시간당 30~60달러를 주고 대리 줄서기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공청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몇몇 환경운동가들은 기후변화 관련 공청회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로비스트들의 좌석 독식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의회 방청권을 상품으로 바꾸는 행위가 의회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부패시킨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실제 가치보다 낮게 측정된 방청권이 대리 줄서기 산업을 통해 시장에 등장하면서 비효율이 사라진다. 최대 가격을 지불하려는 사람에게 좌석이 할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의회를 대의정부 기관이 아닌 하나의 사업체로 전락시킨다. 센델은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줄서기의 미덕이 더욱 빨리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가격을 지불하는 시장논리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샌델의 지적이 분명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수호해야 할 미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이 지점에서 해결되지 않는 물음이 생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대리 줄서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면 될까? 시행령을 발표하면 될까? 아니면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면 될까? 아니다. 모두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존 롤즈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공정의 원칙을 적극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각자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롤즈는 여기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인정한다. 만약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최소 수혜자들의 삶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면, 불평등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롤즈라면 대리 줄서기 회사를 이용하는 로비스트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그렇게 거둔 돈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대리 줄서기 쿠폰을 나눠주는 방안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샌델은 다르다. 그는 시장이 미덕과 품위를 손상시키니 그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당위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제도는 분명 윤리를 저해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는다면 기업들은 마음껏 이산화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도심 재개발에는 많은 문제가 따르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도시는 점점 낙후되고 슬럼화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완벽히 선한 것도, 완전히 악한 것도 없다. 훌륭한 정부는 언제나 이 둘 사이에서 최대한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과감히 시도하되, 빠르고 유연하게 수정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 아닐까? 그럼으로 나는 샌델보다는 롤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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