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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멸망 부른 ‘화폐개혁’
  • 임하영
  • 승인 2019.06.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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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종종 풀리지 않는 의문에 부딪힐 때가 있다. 강성해 보이던 나라가 순식간에 망한다거나, 선택의 기로에 선 인물들이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린다거나,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기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할 때,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을 모두 세려면 끝이 없겠지만, 중국사를 놓고 보면 크게 두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어째서 14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위·촉·오 중 가장 약소했던 촉나라는 왜 최강자 위나라에 반복해서 시비를 걸었을까?

『역사 속 경제 이야기』는 이러한 질문들을 경제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먼저 진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진나라는 14년 동안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대부분의 왕조들이 왕위찬탈 혹은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멸망했던 반면, 진나라는 끝까지 국력이 소실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나라를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었을까? 바로 무리한 재정과 통화 정책이었다.

진시황은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 직후 강력한 표준화 정책을 추진한다. 그는 제후국을 없애고 군현제를 실시하였고, 문자를 통일하였으며 수레의 폭을 하나로 일치시켰다. 그리고 6국의 화폐를 모두 폐지하고 진나라 화폐만 사용하도록 정했다. 다시 말해 진나라의 경제 순환으로 기존 6국의 경제 순환을 대신하고, 진나라의 화폐와 재정 정책으로 6국의 화폐와 재정 정책을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진나라의 동쪽에 있던 제, 초, 연, 한, 조, 위, 6개 나라의 경제 사정이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판이한 시스템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엄청난 충격 가운데, 진나라는 노역을 줄이거나 세금을 낮추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중앙은행 제도를 시행해 민간의 신규 화폐 주조를 금지했다. 자연스럽게 화폐의 가치가 급속도로 오르며 상업이 위축되었다. 상인들은 연이어 파산했으며, 백성들의 생활수준 역시 끊임없이 악화되었다. 게다가 백성들은 만리장성 건축을 비롯한 각종 노역을 힘겹게 감당해야 했다.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가운데 진승과 오광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결국 진나라는 수명을 다하고 만다.

그로부터 500여년 뒤, 대륙에서는 세 나라가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책 등 1세대 영웅들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그중에서도 유비는 죽기 직전 자신의 책사 제갈량에게 아들 유선을 맡기며, 나라를 잘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제갈량은 유비의 사망 직후 5차례나 전쟁을 일으킨다. 제갈량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촉나라와 비교 불가한 영토와 병력을 가진 위나라를 공격했던 것일까?

저자는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제갈량은 자신이 집권하던 시기에 두 가지 과감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하나는 방직업을 발전시켜 촉나라의 특산품인 비단을 개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나라에 함께 대항할 수 있도록 손권을 황제로 인정해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단이다. 가령 촉나라는 10명의 사람들이 각각 곡식 2섬 또는 비단 1필을 생산하는 반면, 위나라는 20명의 사람들이 각각 곡식 1.5섬 또는 비단 0.5필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나라는 무역을 하기 전 각각 절반의 인원이 곡식과 비단을 생산하고 있다. 즉 촉나라는 곡식 10섬과 비단 5필을 생산하는 반면, 생산력이 낙후한 위나라는 곡식 15섬과 비단 5필을 생산한다.

그러나 무역이 시작된 뒤, 제갈량은 촉나라 사람 7명에게 비단을 생산하게 하고, 나머지 3명만 식량을 생산하게 한다. 이렇게 곡식 6섬과 비단 7필을 생산한 촉나라는 비단 4필을 내수로 돌리고 나머지 3필을 촉나라에 수출한다. 이제 제갈량은 비단을 팔아 곡식 6섬을 얻는다. 게다가 국내에도 6섬의 곡식이 생산되고 있으므로 무역을 통해 2섬의 곡식이 여분으로 남는다.

이처럼 무역에서 흑자를 거두자 촉나라는 농사에 많은 노력을 투입할 필요 없이, 남는 인원을 사병으로 훈련시켜 군대를 확장할 수 있었다. 반면 위나라의 방직업은 날이 갈수록 위축되었는데, 그럴수록 위나라 사람들은 농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된 곡식은 다시 무역을 통해 촉나라로 흘러 들어갔고, 제갈량은 다시금 비용을 충당해 위나라의 생산력이 향상되지 못하도록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갈량 통치 당시 촉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웠으나, 그의 후계자들이 평화 정책을 펼치자 곧바로 나라가 굶주리기 시작했다. 결국 위나라가 세력을 키우며 촉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책에는 위의 두 사례 외에도 내시균형, 게임이론, 승수효과, 공유지의 비극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각각의 발전 단계에 있어 사회는 토대와 상부구조로 나뉜다. 상부구조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마땅히 토대로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먹고사니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임하영  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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