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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칠궁 - 6장 만신의 깃발 ②
  • 금강 작가
  • 승인 2019.06.1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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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오성그룹. 김용수 실장은 회장 집무실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금 전 재무팀장의 보고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마지막 희망마저 수포로 돌아가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20년 넘게 몸을 담은 회사였다. 그 회사가 막장을 치닫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허무했다. 아니 그것보다 당장 불같이 화를 낼 회장을 생각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김실장은 노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숙종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회장님.”

김실장이 나직막한 음성으로 불렀다. 숙종이 눈을 떴다.

“회사채 발행이 어렵게 됐습니다.”

“뭐라구?”

숙종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유가 뭐야. 회사채 발행이 왜 안된다는 거야.”

“재무팀장 보고로는 매각 주간사에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증권사를 찾아서 해. 그러면 될 것 아닌가.”

“다른 증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당국에서 오성그룹 회사채 발행을 허용하지 않는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청와대가 뒤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이것들을!”

숙종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사면초가였다.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막지 못하면 부도다. 그걸 피할 유일한 방법은 구제금융이다. 하지만 채권은행에서는 구제금융을 해 줄테니 보유한 주식 전부를 담보로 내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일까지는 반년. 6개월만 버티면 된다. 6개월을 버틸 돈을 어디서 구하지?

선친의 유언이 떠올랐다.

“비자금을 충분히 축적해 둬. 위기에 처할 때 생명줄 네 노릇을 할 것이니 반드시 실천해라.”

선친은 과연 선견지명이 있었다. 이제 그 비자금을 쓸 때다. 그런데 그 생떼같은 돈을 회사에 써야 하나. 회사가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돈만 날리는 건 아닐까. 아니지. 그 돈을 굳이 다 쓸 필요는 없어. 일단 급한 불만 끄고 나머지는 챙겨뒀다 훗날을 대비하자.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숙종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 있는 진돗개 2를 불러.”

김실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돗개 2는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이다. 미국 브라운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외국계 사모펀드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그를 추천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를 추천한 것은 재무 감각이 탁월한 이유도 있었지만 대학 후배로 믿고 맡길만하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장은 처음엔 그를 믿지 않았다. 작은 돈부터 조금씩 맡기기 시작하더니 10년이 지나서야 안심하고 전폭적으로 맡겼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돗개 2는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회장이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카리브해 연안의 조세피난처에 안전하게 예치해두고 절세에 재테크까지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왔다.

김실장은 짐작이 갔다. 이 시점에서 회장이 진돗개 2를 호출한 까닭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실장은 확인했다.

“스티브 윤 말입니까.”

“그래. 해외 계좌에 예치된 돈을 다 찾아서 국내로 들여보내. 방법은 윤이 더 잘 알 거니 속히 실행해.”

 

미국 현지 시각 새벽 1시. 스티브 윤은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윤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김용수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회장님 긴급 지시야. 케이먼 군도에 있는…….”

듣고 있던 윤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전화벨 소리에 깼는지 몸을 뒤척였다. 윤은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윤이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선배님. 연락드리죠.”

윤은 휴대폰을 든 채 베란다로 갔다. 이숙종 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탐욕으로 얼룩진 얼굴. 20년 넘게 그의 비자금을 관리하며 단 한차례 실수도 없이 욕구를 충족시켰다. 돌아온 것은 쥐꼬리만한 커미션. 그게 늘 불만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윤은 기업인으로서 이숙종회장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다. 오성그룹의 신용도가 하락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건설 조선 업종의 불황 탓도 있지만 비자금의 원인이 더 컸다. 회장이 회사로 보내야 할 돈을 과도하게 빼돌려 회사에 손해를 입힌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윤은 통화 내용을 다시 상기했다.

비자금을 회수하겠다. 그게 회장의 뜻이고 요지다. 회장이 비자금을 빼 가면 그나마 꼬박꼬박 챙겨오던 커미션도 끝이다. 회장은 그걸로 어떻게든 재기하려고 하겠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윤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 다음 아내가 잠든 침대로 돌아왔다.

 

이튿날 한국 시각 오후 다섯 시. 김용수 실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실장은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했다. 국제전화였다. 김실장은 전화를 받았다. 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입니다. 선배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행동에 놀라지 마십시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암튼 그렇게만 알고 계시고 회장님 바꿔 주세요. 회장님과 직접 통화해야겠습니다.”

김실장은 잠깐 생각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김실장은 휴대폰을 들고 회장실로 갔다.

“스티브 윤 전홥니다. 회장님과 통화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숙종이 대답 대신 휴대폰을 나꿔챘다. 숙종이 먼저 말했다.

“윤. 지시 내용은 들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비자금은 보내겠습니다. 대신 제 몫을 나눠 주십시오.”

“자네 몫이라니. 지금까지 커미션을 꼬박꼬박 가져갔는데 또 뭘 원하나.”

“그 커미션은 제가 회장님께 벌어드린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저는 정당한 대가를 원합니다. 주실 겁니까.”

숙종은 말문이 막혔다. 윤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는 비자금을 은행에만 두지 않고 적시적소에 잘 굴려서 확실한 수익을 내게 했다. 숙종은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좋아. 얼마를 원하나.”

“하픕니다. 커미션이 아니라 비자금 전체의 하프요.”

“뭐 뭐라고. 그 돈이 얼만데 절반을 달라고? 자네 정신이 나갔나.”

“아뇨 멀쩡합니다. 회장님께서 싫다고 하시면 깨끗하게 포기하겠습니다. 단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뭐야.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이런 날강도 같은 놈.”

“통화가 끝난 뒤 24시간을 주겠습니다. 그 안에 결정하십시오. 절반을 주시면 깔끔하게 마무리해드리고 아님 한국 검찰에 회장님 비자금 장부를 까겠습니다. 그리고 참, 분식회계도 많이 하셨던데 그것도 까드릴까요.”

숙종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휴대폰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김 실장은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귀에 갖다 댔다. 전화가 끊겨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숙종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김실장은 뒷걸음을 쳤다.

“거기 서!”

숙종의 고함소리에 김실장은 멈칫 섰다.

“너희 두 놈 짜고 하는 짓이지. 대답해 어서!”

김실장은 기가 막혔다. 숙종은 이성을 잃은 듯했다. 컵을 내동댕이치더니 미친 듯이 집기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물병 하나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김실장은 황급히 몸을 돌려 피했다. 숙종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김실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왔다. 여비서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김실장은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장이 두려웠다. 택시를 잡았다. 모범택시였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오성병원. 아니 한남동으로 갑시다. 유엔빌리지 쪽이요.”

그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가슴이 철렁했다. 번호를 봤다. 스티브 윤이었다. 김실장은 대뜸 화부터 냈다.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회장님이 자네 전화 받고 생난리를 치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저는 제 몫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회장님의 의사에 달렸어요. 물론 거절하면 장부를 몽땅 깔 거구요.”

김실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회장이 극도로 흥분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김실장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자네 행동은 옳지 않아. 이건 범법행위야. 평생 감옥에 썩고 싶나.”

“비자금 사실을 제보하는 게 왜 죄가 됩니까. 저도 다 알아보고 하는 겁니다. 오히려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은 이회장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김실장은 뭐라고 답변해야 좋을지 몰랐다. 윤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이번 일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제가 조성한 비자금의 절반을 주십시오. 그러면 통 크게 반을 드리겠습니다. 선배님께서 회장님을 설득하세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회장님과 선배님 그리고 저 셋밖에 없다는 거 아시죠. 서로 돈을 나눠 갖고 입을 다물면 됩니다. 그러면 깨끗하게 클로징 돼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배님.”

김실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윤이 다시 말했다.

“회장님껜 24시간 안에 결정하시라고 통보했습니다. 그 전에 선배님이 먼저 결정하시고 연락 주십시오. 이만 끊겠습니다.”

김실장은 휴대폰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윤까지 이러고 나올 줄이야. 윤은 회사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어. 그래서 회장이 코너에 몰려 있는 걸 알고 베팅을 한 거야. 근데 총 비자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하지만 꽤 될 텐데 간도 큰 놈이군. 그 많은 돈을 꿀꺽하겠다니. 그나저나 이 일을 어떻게 하지.

궁리도 잠깐,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화면을 봤다. 회장의 휴대전화 번호였다. 김실장은 망설였다. 회장의 무서운 표정이 떠올랐다.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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