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가 몰아주기 규제를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견기업 오너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올해 식품업계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업종의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중점을 둘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심그룹 등 중견업체들에게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농심그룹의 자산 규모는 지난 약 4조5000억원으로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돼온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해왔다. 공정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농심그룹의 내부거래는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태경농산, 율촌화학, 농심미분 등의 계열사들은 내부거래 의존도가 약 40~60%에 달한다.

농심 제품들의 스프 제조를 맡고 있는 태경농산은 신춘호 농심 회장의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42.9%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사 농심홀딩스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경농산의 지난해 특수관계자 매출은 약 198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57.0% 수준이다. 지난해 57.0%에 비하면 내부거래 비중이 약 4.2% 낮아진 셈이지만 여전히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농심과의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의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등 오너일가가 지분 전량을 보유한 곡물 제분업체 농심미분 또한 규모는 적지만 내부거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농심미분의 지난해 매출은 약 104억원, 특수관계자 매출은 약 38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중은 36.6%였다. 이는 지난해(41.6%)보다 5.0% 감소한 것이지만 공정위 기준(3년 평균 내부거래 비중 12% 이상)에 비하면 세 배나 높은 수치다.

신 회장의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승계한 식품 포장재 생산업체 율촌화학 역시 내부거래 의존도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다. 율촌화학의 지난해 특수관계인 매출은 약 1801억원으로 전체 매출(4836억원)의 36.8%. 이는 지난해(35.7%)보다 오히려 높아진 수치다. 율촌화학 또한 신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이 32.99%로,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42.9%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사 농심홀딩스 지분(31.94%)을 더하면 약 65%에 달한다.

이밖에도 호텔농심, 농심엔지니어링, 엔디에스 등 여러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커, 향후 공정위 감시망에 포착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율촌화학, 농심미분, 태경농산, 호텔농심, 농심엔지니어링, 엔디에스 등 6개 계열사의 내부거래 총액은 무려 4848억원에 달했다. 이중 태경농산과 농심미분을 제외한 4개 계열사는 전년 대비 내부거래액이 모두 증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15개 중견그룹 전문경영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는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소 협력업체와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그릇된 관행으로, 이제 더는 우리 사회에서 용납돼선 안 된다”며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공정경제 구축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에도 “자산 2조~5조원 상당 중견그룹의 부당지원행위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계열사 및 20% 이상 비상장계열사가 특수관계자와 연간 거래총액 200억원을 초과했거나 3년 평균 12%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경우 적용된다. 공정위가 해당 기준을 자산규모 2~5조원의 중견기업까지 확대 적용할 경우 농심은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오너일가 사익편취에 대한 공정위의 창끝이 중견기업으로 향하는 가운데, 농심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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