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지난해 8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정농단’ 혐의로 상고심 재판 중인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주도적으로 작성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17일 시사저널은 박 전 대통령 취임 전인 2013년 2월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녹음한 녹음파일 2개(각각 1시간 9분30초, 16분49초)를 공개했다. 녹음파일에는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 최씨 등 세 명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작성한 취임사 초안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취임사 관련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이날 논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최씨였다. 최씨는 취임사 초안에 대해 “정확하게 딱 내지르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부사적이고 드라마틱한 것도 아니고 어떡하나”라며 “이게 다 별로인 것 같다.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 공약을 나누는 건..”이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 전 비서관이 “이게 공약이 아니라 이번에 인수위에서 쭉 해온 국정과제다”라고 해명하자, 최씨는 “그게 공약이지 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그런 국정과제를 얘기하기엔 너무 좀 쪼그라들어가지고…”라며 거들자 최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최씨는 이어 취임사 초안의 복지정책 관련 내용을 지적하며 “이런 게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돼? ... 이렇게 늘어지는 걸 취임사에 한 줄도 넣지 마”라고 지시했다.

정 전 비서관은 시종일관 최씨의 발언을 들으며 받아적는 모습이었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잠시 최씨의 지적을 받아적지 못하자 “빨리 써요. 안 쓰고 있잖아”라며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기조도 이날 회의에서 최씨의 입을 통해 나왔다. 최씨는 “경제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뭘 하겠다는 걸 일단 넣자”며 “나는 경제부흥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의 키를 과학기술·IT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주력할 것이다. 그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다” 등 최씨의 발언이 반영된 표현이 등장한다.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은 최씨의 발언에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오히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의견을 정정하거나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이 '부국・정국・평국' 등의 표현을 제안하며 의미를 설명하자, 최씨는 말을 자르며 “다른 표현을 상의해보라”고 요청했고 박 전 대통령은 “예예예”라고 답했다. 내일 발표내용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에 박 전 대통령이 "거기만 안했어요"라고 답했을 때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당시 국내 언론에는 유민봉 전 국정기획 수석과 강석훈 전 새누리당 의원이 초안을 만들고 정 전 비서관이 작업을 총괄했으며,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취임사를 세세하게 손봤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이날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당시 보도와는 달리 최씨가 사실상 취임사 작성을 주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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