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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칠궁 - 5장 퇴마사 최후의 결전 ⑤
  • 금강 작가
  • 승인 2019.05.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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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닷새 뒤 오성그룹. 긴급 소집된 재무 담당 임원들이 회장실로 모였다. 전날 주채권은행으로부터 받은 통보 내용 때문이었다. 임원들이 각자 의견을 개진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깁니다. 느닷없이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니 회사 망하라는 얘기 아닙니까.”

“당장 대출금을 갚으라는 건 아니고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으라는 뜻입니다. 약정을 맺으면 대출금을 회수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소립니까 그건 족쇄예요. 현 상황에서 재무개선약정을 맺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량계열사를 싼 값에 매각해야 하고 오성은 빈껍데기만 남을 겁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숙종이 맨 앞자리 임원에게 물었다.

“주채권은행장이 대학 동기라던데 배경에 대해선 알아봤소?”

“예 회장님. 행장 말로는 위에서 오더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위라면 어딜 말하는 거요.”

“딱 찍어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금융감독원이나 더 윗선인 청와대 쪽에서 오더를 내린 것 같습니다.”

“으음 …….”

숙종의 입에서 들릴락말락 신음이 새어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응해올 줄이야. 채권은행의 압박은 장인의 지시일게 뻔했다. 한마디로 무릎 꿇고 빌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빌 상대는 장인이 아니라 명신이다. 죽으면 죽었지 명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구걸하기는 싫었다.

숙종은 결단을 내렸다.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시오. 그리고 재무구조개선약정은 거부하진 않되 시늉만 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소.”

임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임원들이 물러나자 숙종은 김실장을 불렀다.

“민국당 김국진 대표최고위원 요즘 어떤가.”

김실장은 재빨리 말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다크호스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고 여권 내에서도 따라올 경쟁자가 없습니다.”

“대선까지 얼마나 남았지. 혹시 그 사이 변수는 없을까.”

“정확히 10개월 남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김대표가 민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게 확실합니다.”

“김대표를 만나야겠으니 약속을 잡아. 최대한 빨리.”

김실장이 나가자 숙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흠 어디 한번 붙어보자구. 떠오르는 해가 지는 해보다 기운이 강한 법이지. 나 이숙종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튿날 저녁 6시, 오성호텔 스위트룸. 김국진 대표는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타났다. 숙종이 깍듯한 자세로 인사하자 김대표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이회장.”

“예 대표님. 많이 바쁘실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그보다 무슨 일로 급히 만나자고 한 겁니까.”

“회사 일로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저도 뭐 도울 일이 있는지 겸사겸사 해서 뵙자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오성그룹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많이 힘듭니까.”

“주력업종인 건설 쪽이 워낙 불황이라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월드타워만 매각되면 자금 사정이 풀릴 겁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어려운 때가 있는 법이지요. 그 고비를 잘 넘겨야 해요. 그런데 요즘 청와대 쪽하고 사이가 안 좋습니까. 대통령 자제분과 소송 중이라면서요.”

“실은 그 때문에 뵙자고 한 겁니다. 얼마 전에 회사 정상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제 처남들을 정리했는데 그 때문에 청와대와 틀어졌어요. 그 후에 채권은행이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와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알 것 같네요. 대통령님은 이회장 장인어른이시니 화가 단단히 났을 거고 채궝은행은 기업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표님. 방도가 없겠습니까. 이번에 한번 도와주시면 대표님께서 당선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글세요 나도 요즘 경선 준비하느라 바빠서…….”

김국진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숙종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러시겠지요. 경선 자금은 충분하십니까.”

“그야 뭐 참모들이 이리저리 뛰는 모양인데 자금 마련이 예전 같진 않지요.”

“필요하신 자금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적극 마련해보겠습니다.”

“보좌진을 통해 다시 연락드리죠. 채권은행 문제는 그 다음에.”

“고맙습니다 대표님. 꼭 연락주십시오.”

숙종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김대표가 손을 내민 뒤 숙종의 어깨를 툭 쳤다. 김대표가 방을 빠져나가자 숙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돈으로 안되는 게 어딨나. 그런데 요구 금액이 크면 어쩌지. 아니지 금액이 크면 클수록 좋아. 빼도 박도 못할 테니.

 

숙종이 분주하게 머리를 굴리는 그 시각, 김용수 실장은 연아의 호출을 받고 오성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문안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연아는 납치돼 테러를 당한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했다. 보통사람이 그런 험한 일을 겪으면 주눅이 들게 마련인데 연아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전보다 더 활력이 넘쳤다. 놀란 건 그뿐 아니었다. 오성그룹의 현안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중에는 미처 보고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날 한남동 빌리지에서 용잠을 하사받은 뒤 중요한 현안은 빠짐없이 보고해왔다. 그때마다 연아는 앞일을 예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월드 타워 매각 건을 보고 하자 연아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거 매각 안되고 은행 손에 넘어갈 겁니다. 그런 고층 빌딩은 리스크가 따라요. 그보다 오일이 나오는 중동 지역에서 국민주택 짓는 게 보장성이 훨씬 좋고 이윤도 많이 남습니다. 명심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 연아를 쳐다봤다. 족집게도 그런 족집게가 없었다. 연아가 우러러 보였다. 이숙종회장 자리에 연아가 들어서서 진두지휘하면 오성의 미래가 확연히 달라질 것 같았다.

지난번 병문안을 갔을 땐 이런 말도 했다.

“이창신 이덕신 수하들을 조심하세요. 그 사람들은 지금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기회가 오면 반드시 반격합니다. 잘 대비하세요.”

오늘 채권은행 재무구조개선 약정 건을 논의할 때, 약정을 맺어도 괜찮다고 주장한 임원이 바로 이창신부회장의 측근이었다.

신통방통한 일은 또 있었다.

“날 납치한 범인을 붙잡은 사람이 보고싶어 하네요. 그 사람이 자꾸 내 눈에 어른거려요.”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데리고 오세요. 그 사람은 나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니 만나봐야겠어요.”

오늘이 그 날이다. 오성병원에 도착했다. 입구에 경찰관 한 명이 보였다. 박찬일이었다. 경찰복장을 한 박찬일은 생소해 보였다. 머리통이 워낙 커 경찰 모자를 쓴 게 아니라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았다. 김실장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박찬일이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건넸다.

“김실장님. 알고 보니 신사네요. 저하고 한 약속을 지킨 걸 보니.”

“내가 아니라 사모님께서 보자고 한 겁니다.”

“예에? 그게 뭔 말입니까.”

“암튼 들어가요. 기다리고 있으니까.”

VIP실에 들어서자 연아가 보였다. 연아는 병상에 누워 있지 않고 응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김실장님. 이 분이신가요. 절 납치한 범인을 붙잡은 분이.”

연아가 박찬일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박찬일은 속으로 놀랐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기품이 느껴졌다. 그뿐 아니었다. 지긋이 바라보는 눈빛에 범접 못할 위엄마저 느껴졌다. 그 모습에 이끌려 박찬일이 불쑥 내뱉었다.

“저어 혹시 백사마을에 만신 집을 찾아온 장연아씨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제가 장연아예요.”

“아이고 반갑구만요. 저희 반장님 하고 얼마나 찾았는데.”

“왜 저를 찾으셨나요.”

“…….”

갑자기 물어보니 말문이 막혔다. 박준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예 그게 그러니까 칠궁 사건 때문에. 노리개에서 장연아씨 지문이…….”

그때였다. 병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박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어 반장님 어쩐 일입니까. 민생치안만 하시겠다더니.”

“이 분이 장연아씬가.”

박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훈이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서오릉 장희빈 묘에 간 적이 있습니까.”

“네 여러 번 갔었죠. 왜요.”

“장희빈 묘 부근에서 금장식 노리개가 발견됐는데 장연아씨 지문이 묻어 있었어요.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시죠.”

“제 것이니 당연히 지문이 있겠죠. 경관님이 말한 노리개는 단순 노리개가 아니고 옥나비입니다. 왕후가 궁중 대례식에서 착용하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왜 거기 떨어져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서오릉에 구경 갔다가 떨어뜨렸을 수도 있고. 암튼 그 옥나비는 제 것이니 돌려주세요.”

연아의 말투는 당당했다. 예상 밖으로 거침없는 시인에 김훈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게 장연아씨 소유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입증을 하면 돌려드리죠. 근데 혹시 칠궁에 다녀간 적은 있습니까.”

“네. 칠궁도 여러 번 가봤어요.”

“거짓말 하시는군요. 조사를 해봤더니 칠궁 방문자 명단에 장연아씨 이름이 없던데. 왜 가지도 않았으면서 갔다고 하는 거죠?”

연아가 김훈은 빤히 쳐다봤다. 김훈이 연아를 마주 봤다. 두 눈동자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연아가 말했다.

“사람 잘못 봤어요. 전 쓸데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제가 본 칠궁의 모습을 말씀드릴까요. 칠궁은 남북이 아니라 동서로 연결돼 있어요. 첫 번째가 숙빈 최씨 신위가 있는 육상궁이고 두 번째는 정빈 이씨를 모신 연우궁. 세 번째가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 덕안궁. 네 번째가 순조 생모 수빈 박씨 경우궁. 다섯 번째가 사도세자 생모 영빈 이씨 선희궁. 여섯 번째가 경종의 생모이신 희빈 장씨 대빈궁. 마지막이 원종 생모 인빈 김씨 저경궁이에요. 칠궁 정원에는 냉천정이 있고, 초가 정자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죠. 내가 봤을 때 칠궁은 위치 선정이 잘못돼 있어요. 육상궁이 첫째 위치란 게 말이 됩니까. 육상은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뜻인데 숙빈 최씨는 상서로움과는 전혀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권모술수를 부려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데 능한데 어찌 상서롭다고 하겠어요.”

박찬일의 입이 벌어졌다. 칠궁의 지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궁에 담긴 뜻까지 요해하는 연아의 설명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김훈은 그러나 반신반의했다.

“칠궁은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입니다. 장연아씨는 명단에 없던데 어떻게 들어갔죠?”

“명단에 꼭 있어야 간 겁니까. 그렇게 묻는 저의가 뭐죠.”

“숙빈 최씨 신위가 사라졌고 대빈궁이 훼손됐습니다. 현재 범인을 쫓고 있는 중인데 장연아씨 납치범이 칠궁사건과 관련이 있어요. 납치범과 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한번도. ”

“그런데 왜 납치를 당한 거죠.”

그 질문에 연아는 갑자기 입을 댜물었다. 김훈이 재차 물었다.

“납치범들이 사람을 납치할 땐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돈이면 돈. 애정관계면 애정관계. 어느 쪽입니까.”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에요.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이 있어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거나 혼이 나가서 정신 이상자가 된다거나 전혀 예기치 않은 운명을 겪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죠. 그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물귀신보다 더 못된 여자가 그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넣었어요. 나는 납치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 사람 원망은 하지 않습니다.”

김훈은 말문이 막혔다. 맞는 얘기인 것도 같고 황당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종을 잡을 수 없었다. 옆에서 박찬일이 말을 툭 던졌다.

“거 어째 말하는 투가 땡초 닮았네. 이봐요 장연아씨. 혹시 장희빈 묘소에 갔을 때 봉두난발한 도사를 본 적 있습니까.”

도사 이야기를 꺼내자 연아의 안색이 싹 변했다.

“얼굴 표정이 안 좋네요. 도사와 아는 사입니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네요. 오늘 얘기는 이걸로 끝내요.”

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찬일이 연아의 팔목을 붙잡았다.

“잠깐만. 아직 물어볼 말이 더 남았거든요.”

“앞으로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전화드릴 테니 명함 한 장 주시고 오늘은 이만.”

박찬일이 엉거주춤 명함을 꺼내 전했다. 연아가 김실장에게 말했다.

“두 분 잘 배웅해 드리세요.”

연아가 먼저 병실을 나갔다. 김실장이 다급히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십니까 사모님.”

“퇴원합니다. 그리고 실장님.”

“말씀하십시오.”

“이제부터 오성에 빠른 변화가 닥칠 것입니다.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해 주세요.”

연아가 엄한 표정으로 지시했고 김실장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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