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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가 던지는 메시지
  • 임하영
  • 승인 2019.05.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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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크고 작은 위기로 가득하다. 방심하면 찾아오는 건강의 위기, 피할 수 없는 관계의 위기, 그리고 이따금씩 급습하는 잔고의 위기.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존재론적 위기다. 삶을 지속할 의미를 잃을 때 우리는 더없이 무력해지며, 극단적인 경우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전해준다. 때는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 날. 동료 수감자가 희한한 꿈을 꾸었다며 프랭클을 찾아온다. 바로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1945년 3월 30일 수용소가 해방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목소리를 전적으로 확신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야속한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3월 29일이 되자 그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3월 30일에는 헛소리를 하다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3월 31일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망의 표면적 원인은 발진티푸스였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을 무너뜨린 것은 해방이 오지 않았다는 근본적 절망이었다.

니체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그렇다면 삶의 의미, 즉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저자는 말한다. 삶이란 그저 막연한 것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무언가라고. 포괄적인 삶의 의미를 찾기란 불가능하기에,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삶은 각각의 상황을 통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나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짊으로써’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나의 운명은 그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것이며, 그 운명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니체는 또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실존적 좌절은 실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낳는다. 이를 신경안정제 한 움큼으로 해결하려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러한 고통은 병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 현재의 자신과 앞으로 되어야 할 자신 사이에 놓인 긴장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 간극이 바로 실존적 역동성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아니 떠올릴 수 없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했고, 투지를 잃었으며,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과거는 고통스러웠고, 현재는 불만족스럽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누군가는 이를 유약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한다. 잘못된 교육을 받아서, 혹은 게임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진단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의미의 부재에서 오는 집단적 실존 위기라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에는 모두가 산업화를 위해 땀을 흘렸고, 아버지 세대에는 많은 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 시절이 더 열악했지만, 결국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모두가 각자의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N포세대가 된 이유는 더 이상 하루하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인상적인 실험이 등장한다. 어떤 학자가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해 보이스카우트 그룹들이 서로 공격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관찰했더니 소년들이 같은 목표를 갖고 행동할 때만 공격성이 누그러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마자 그들은 자신들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도전을 받았고, 그래서 서로 협동하게 되었다.

프랭클의 이론을 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계층, 이념, 성별을 넘어선 공동의 목표, 다수가 매진할 수 있는 시대적 아젠다를 누군가는 설정해야만 한다. 만약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 의미 부재 사회에서 의미 없이 개인들이 살아간다면, 갈등만 계속해서 증폭될 것이다. 그렇게 허비하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고 아깝다.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임하영  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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