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수성고 자살학생이 남기 A4용지 3장에 남긴 메모. © News1
대구의 한 고교생이 '폭력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또 투신자살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중학생이 동급생들의 집단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이후 대구에서만 불과 5개월여 사이 중·고교생 10명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고, 지금까지 8명이 아까운 목숨을 버렸다.

교육당국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학생 지도관리가 겉으로 보이는 데만 치중, 정작 학생들의 속 깊은 고민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또 투신자살…

지난 2일 오후 7시5분께 대구 수성구 지산동 모 아파트 화단에서 인근 고교 1학년인 K(15)군이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원 정모(70)씨가 발견, 신고했다. 119구급대가 출동, K군을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날 아파트 CCTV에는 오후 4시16분께 K군이 혼자 현관으로 들어오는 장면과 엘리베이트를 타고 15층에서 내리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경찰은 K군이 15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K군은 숨지기 전 인터넷 축구게임 동호회 회원들과 카카오톡을 통해 “2년 동안 힘들었다. 돈도 빼앗겼다. 싸우러 간다”는 등의 대화를 나눴다.

또 올 1월 K군이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선후배로 구성된 축구동아리에서 맞아 고막을 크게 다친 뒤 괴로운 심정을 호소한 내용과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 왜?

K군이 남긴 유서에는 절박하고 괴로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학교폭력과 집단괴롭힘을 당한 학생의 심리상태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2년 가까이 폭력을 당했다"는 K군이 올 1월에 쓴 것으로 보이는 A4 용지3장 분량의 유서에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로 시작된다.

“더 이상은 살기 힘들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어떤 나쁜 녀석에서 조금만 잘못해도 맞고 시키는 것 다 하고 매일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오늘도 축구를 하자고 나오라고 했는데 10분 늦었다고 때렸어요. 이유를 설명하는데 변명한다고 때리더군요. 이렇게 저는 거의 매일 맞았어요. 고막이 찢어진 것도 그 녀석 때문에요. 너무 힘이 들어요. 많은 애들이 심부름을 시켜서….

스키장에 가지 못한 것도 그 녀석이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갔어요. 아마 CCTV를 돌려보면 매일 잡혀가는 모습이 나올거에요. 그래도 안되면 거짓말탐지기라도 써서 그 녀석을 꼭 벌주세요. 모든 분께 죄송하고 고마워요…"

K군은 ‘그 녀석’에게 당한 폭력과 미운 감정을 자세히 적어놓고 있다.

◇학교, "폭력 사실 전혀 몰랐다"

K군이 2년 가량 학교폭력에 시달려 왔다는 내용의 유서와 메시지를 남겼으나 학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K군의 담임 교사 박모(52·여)씨는 경찰에서 "평소 밝은 성격인데다 학교 생활을 잘하고 성적도 상위권이며 교우관계가 좋은 모범생이었다"며 K군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K군은 반에서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군이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박 교사는 "여러 차례 면담을 했지만 학교 선배나 친구들에게서 폭행을 당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 학교 학생부장인 박모 교사도 "K군이 중학생 다닐 때 축구모임에서 활동했는데, 고교 진학 후에도 줄곧 같이 모여 함께 운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교폭력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지만 K군이 따돌림 등 피해를 당한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학생부장인 박 교사는 "K군을 괴롭힌 학생이 있다면 축구 모임에 있는 학생일 것"이라고 했다.

◇경찰, 학교 밖 동아리에 수사 초점

경찰은 유서와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토대로 K군이 2년여 전 중학교에 재학 중일 때부터 함께 활동했던 축구 모임을 주목하고 있다.

또 K군이 가입한 인터넷 축구게임 동호회의 회원 등이 폭력이나 집단괴롭힘 등을 알고 있었는지, 폭력에 가담했는지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학생폭력과 관련한 대책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냈고, 최근 몇달 동안 학교폭력과 관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별다른 대책을 세우고 않고 있다.

◇"파행적 교육이 학생 자생력 잃게 만들어"

학교폭력 등으로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버리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박 겉 핱기식 대책을 아무리 쏟아내봐야 소용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48) 교수는 "문제가 터질 때 마다 교육당국이 학생 상담교사를 확충한다고 하지만 교사 몇 명이 학생을 전부 상담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또 "성적 위주의 파행적인 현재의 교육으로는 사춘기의 민감한 학생들을 컨트롤하거나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줄 수는 없다"고도 했다.

"담임과 부담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더 밀착해서 깊이 있게 상담하고, 학부모들은 교사를 믿고 따라야 할 것"이라는 허 교수는 "가정에서도 성장단계에 따라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너무 귀하게 키우려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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