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심재철 한국당 의원이 '유시민 진술서'를 공개한 후 후폭풍이 일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심 의원과 같이 서울대를 다녔던 선후배들이 잇따라 심 의원을 저격하는 글을 올린 것.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형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럽고 추한 것이었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더 안타까운 것은, 형만이 아직도 80년 신군부의 법정에 남아 당시의 원한과 부끄러움에 사람들을 원망하고 상처내고 있다는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윤호중 의원은 ‘S형에게’라는 영문 약자를 사용하면서 심재철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윤 의원은 “S형,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형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절대 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젠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아니, 오히려 나를 참지 못하게 하는 형이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S형, 고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고 문익환 목사, 이해찬 대표, 설훈 최고위원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유죄판결에 있어서 핵심법정증언이 바로 형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어찌 형만 부정하시냐?”며 “제가 81학번이어서 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당신을 처음 본 것은, 84년 형이 복학을 한 뒤였소. 따라서 80년에 형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에 대해 많은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니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윤 의원은 “이것은 분명히 묻고 싶다. 80년 서울역 진출과 회군을 결정한 총학생회장이었던 형이, 84년 복학해서는 왜 복학생협의회장을 맡지 못하고 대의원대회의장이었던 후배 유시민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라며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거나 군대에 끌려갔다온 분들 중 어느 누구도 기간방송사에 기자로 채용된 이가 없건만, 유독 형만이 징역 대신 군대 갔다 와서 다른 정권도 아닌 전두환 정권에서 MBC기자가 될 수 있었는지, 형이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진 않겠지요. 전두환의 5공시절이 내란음모 종사자를 공중파방송사 기자공채에 응했다고 뽑아주던 때였던가요?”라며 심재철 의원의 기자 입사를 물었다. 

이어 “94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관련자들이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를 내란죄로 고발할 당시, 형이 80년 자신의 행위를 ‘폭력 앞에 자포자기하고 철저히 무너져버렸다’고 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문민정부로 불렸던 김영삼 정권에서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자신의 훼절과 배신의 경력을 세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스스로 반성하고 고백했던 일을 이제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들 탓으로 뒤집어씌우는 행동을 할 수 있느냐?”라고 질타했다. 

심 의원과 친구 사이인 유기홍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시 상황을 공개했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시민 이사장과 심재철 의원 사이에 오가는 이아기들을 보면서, 80년 ‘서울의 봄’ 당시 두 사람이 대의원회의 의장과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는 선거관리를 맡고, 과도정부 역할을 담당했던 <서울대 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총무위원장을 맡아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유기홍 전 의원의 페이스북 갈무리

이어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때 친구였던 심재철 의원 자네가 크게 헛발질을 했네. 애초에 유이사장은 자네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네가 또 그 나쁜 버릇인 오버를 해서 자충수를 둔 셈이지. 2004년 이해찬 총리 인사청문회 때 자네가 80년 서울의 봄 당시의 부채(!)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총리 후보자에게 색깔론을 펴서 나를 열받게 했던 것처럼 말이지”라며 “자네의 법정증언이 이해찬 선배 등이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엮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지. 그때처럼 이번에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내에서 존재 증명이 필요했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유 이사장은 아다시피 5.17쿠데타 당시 학교를 지키다 가장 먼저 계엄사로 끌려갔지. 그때 나도 청량리경찰서에 잡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갔지만 당시 비공개 지도부 <무림>의 일원이었던 내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지. 당시 유시민이 모든 일을 밖으로 드러나 있던 공개지도부로 돌리고 비공개 지도부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는 말이지”라며 “유시민이사장이 조사받으며 70여 차례 심의원을 언급한 것이 문제인가? 총학생회장인 자네가 아니라 비공개 지도부를 실토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당시 상황의 중심 가까이 있었던 나로서는 유시민은 조직을 지켰고, 심재철 검거 이후에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작이 완성되었다는 것이지. 누가 그러더군. 유시민이 예능으로 한 말을 심재철이 다큐로 받았다가 개망신당했다고. 이제 그만 좀 하게. 더 추한 꼴 보이지 말고. 그나마 그것이 5.18. 영령들과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님께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법학과 77학번으로 80년 당시 학보사 기자였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두환은 어마어마한 고문과 장기불법구금을 자행했다. 그때의 자술서는 강제타술서로, 자발성이 없다. 유시민과 심재철의 강제타술서에서 마뜩잖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고문의 정황 증거이지, 그들이 밀고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자술서를 어떻게 썼든,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다. 자술서대로 사건 윤곽을 잡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군부가 짠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75학번 양민호 한반도광물자원연구센터 이사장도 3일 페이스북에 "두 사람 모두 내가 젊은 시절 아끼던 후배들이다. 당시 수사기관 진술서를 갖고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설사 당시 고문에 못 이겨 본의 아니게 진술을 강요당한 자들이라도 그 이후 올바른 행동을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재철은 이미 오래 전에 민주화 동지들을 배신한 정치인이다. 반면 유 이사장은 시종일관 민주진보 진영의 우군으로 활동해왔다. 심재철이 1980년대 초 어떻게 MBC 기자로 입사했는지 그것부터 미스터리"라고 변절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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