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진국들이 치매 연구 관련 예산을 감액하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해당 가짜뉴스에 첨부된 조작된 이미지 중 하나.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진국의 치매 연구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유포돼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글은 해외에서 제작된 의료 다큐멘터리로 추정되는 영상물의 장면들을 갈무리한 내용으로 구성돼있는데, 출연한 의료진들이 모두 치매 연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 의료진은 “최근 의학계는 알츠하이머를 단순한 노화의 한 종류로 결론지었다”며 “이미 미국 정부는 알츠하이머 연구 예산을 삭감하는 중이다. 독일처럼요”이라고 회의감을 표했다.

선진국에서 치매 연구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의 이 글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을 읽은 누리꾼들도 더이상 치매에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냐며 우려하는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이 글이 일으킨 반향은 하루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의아함을 느낀 누리꾼들이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해당 글은 전혀 근거없는 '가짜뉴스'였기 때문. 누리꾼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해당 글에 첨부된 사진들은 BBC가 제작한 ‘외과의사: 생명의 가장자리에서’(Surgeon: At the edge of life)라는 의료 다큐멘터리의 세번째 에피소드 ‘선구자들’(The Pioneers)에 나오는 장면들을 갈무리한 것이었다. 

해당 에피소드는 치매가 아니라 청각 회복을 위한 외과 수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갈무리된 장면에서 의료진들이 하는 이야기도 실제로는 치매연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수술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내용이다.

가짜뉴스에 첨부된 사진의 실제 출처. BBC가 제작한 '외과의사: 생명의 가장자리에서'라는 다큐멘터리로, 가짜뉴스에 활용된 에피소드는 치매가 아닌 청각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진=BBC 홈페이지 갈무리>

선진국들의 치매 관련 R&D예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 보건원(NIH) 산하 국립노화연구소(NIA)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2019년도 예산 관련 글을 직접 링크했다. 실제 링크된 글을 확인해본 결과, NIH의 2019년도 예산은 약 390억 달러였다. 이중 NIA에 배정된 예산은 약 30억8000만 달러였는데 이는 전년(25억7400만 달러) 대비 약 19.7% 증액된 금액이자, 지난 2013년 예산의 세 배에 해당한다.

또한 2019년도 NIA 예산 중 치매 및 알츠하이머 관련 연구예산은 약 4억2500만 달러였다. 이 또한 2018년도 예산(4억1400만 달러)에 비해 약 1100만 달러 증액된 것이다. 가짜뉴스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은 오히려 치매 연구 예산을 증액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실제 치매 연구는 어떨까? <이코리아>가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이 운영하는 생명과학 및 의료 연구 데이터베이스 펍메드(PubMed)를 확인한 결과 치매 관련 연구는 오히려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단순하게 제목에 알츠하이머가 포함된 연구결과만 검색해도 지난해 521건이 검색되는데, 이는 전년(495건) 대비 26건 증가된 수치다. 연도별로 봐도 일부 예외 연도를 제외하면 매년 더 많은 치매 관련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연구 데이터베이스 펍메드(PubMed)에서 제목에 '알츠하이머'가 포함된 연구논문을 검색한 결과. 단순한 검색결과로도 매년 치매 관련 연구 수가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펍메드 홈페이지>

중앙치매센터 김빈나 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해외 치매정책 비교를 통한 국내 치매관리 전략 방안’이라는 글에서 “G7 국가들은 치매환자의 효과적인 돌봄 지원을 위해 치매 조호의 부담과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기술 개발 및 연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치매 연구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치매관련 R&D 예산은 연간 약 13조원 수준. WHO는 국가치매관리비의 약 1%를 매년 치매 연구에 투자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국내는 약 0.3%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이 '가짜뉴스'는 치매가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노화의 결과라고 해서 의학적 대책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수많은 항노화 연구가 진행 중인데, '가짜뉴스'의 논리대로라면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 불필요한 예산낭비일 뿐이다. 치매 연구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가짜뉴스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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