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지사(不射之射)=화살을 쏘지 않고도 쏜다. 진정한 고수는 활을 들지 않지 않는다. 그리고 눈빛 하나만으로도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린다. 활을 쏴서 무엇을 맞추겠다는 마음조차 없는 무심한 경지. 활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지극한 경지. 바로 입신의 경지이다.

 

위기구품의 마지막 품계인 입신(入神)은 프로기사 9단의 별칭으로,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흔히 어떤 분야의 최고수들을 가리켜 입신의 경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입신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신의 경지인 입신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초월해 있는 지극한 세계는 인간의 말로써는 제대로 형용할 수 없다. 신들의 세계는 원래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말과 글로써 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입신의 경지를 설명하려면 입상진의(立像盡意) 즉 형상으로써 뜻을 전하는 방법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송나라 문인 엄우(嚴羽)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입신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가 있다.

 

“시의 지극한 경지가 있으니 이를 입신이라고 한다. 이는 책이나 이치와는 상관이 없다.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다. 시에서 입신의 경지는 자취가 없다. 마치 공중의 소리와 물속의 달,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

 

시는 언어도단(言語道斷) 즉 언어가 끊긴 곳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언어의 자취가 끊긴 지극한 경지를 가리키려면 ‘공중의 소리’ ‘물속의 달’ 같은 비유를 사용할 도리밖에 없다.

 

이를 테면 하늘은 그릴 수가 없다. 그러나 산을 그리면 하늘이 저절로 그려진다. 바다의 수평선을 그리면 그 위에 하늘이 나타난다. 구름을 그려 달을 보여주는 동양화의 홍운탁월(洪雲托月) 기법이 그런 이치다. 마찬가지로 입신에 관한 예화들을 살피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극한 경지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입신의 경지에 대한 예화들은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 그러나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부득불 손가락을 사용해야만 한다. 입신의 경지를 가리키는 예화들은 그 뜻만 취하고 문자는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 조(趙)나라 때의 명궁 기창(紀昌)의 고사를 손가락으로 사용해 입신의 경지를 가리켜 보자.

 

기창은 천하제일의 명궁이 되기로 뜻을 세우고 당시 활의 명수로 이름이 높은 비위(飛衛)의 제자로 들어갔다. 스승 비위가 기창에게 말했다.

“활을 쏘려거든 먼저 눈을 깜박거리지 않는 법부터 익혀라.”

기창은 집에 돌아와 아내의 베틀 밑으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실북이 눈을 찌를 듯이 오고 가도 똑바로 쳐다보는 훈련을 거듭했다. 2년이 지나자 기창은 뾰족한 송곳이 다가와도 눈을 깜박거리지 않게 됐다.

스승 비위를 찾아가 이를 알리자 시큰둥한 대답이 떨어졌다.

“아직 멀었다. 그 다음 단계로 이제부터는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작은 물건을 크게 보고, 희미한 것을 또렷하게 보는 훈련을 해라.”

다시 집에 돌아온 기창은 이 한 마리를 잡아서 실로 동여맸다. 그리고 창문에 매달아놓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훈련에 들어갔다. 실에 달린 이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밤낮없이 바라보자 좁쌀만한 이가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콩알 만해지더니 얼마 뒤에는 엽전만큼 커졌다. 이윽고 3년이 지나자 실에 달아놓은 이가 수레바퀴만큼 크게 보였다.

 

기창이 집밖에 나가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거대한 탑처럼 보이고, 말은 산처럼 큼지막하게 보였다. “됐다” 싶어 기창은 집에 돌아와 창에 매달아 놓은 이를 향해 활을 쏴 보았다. 그랬더니 화살이 이의 심장을 꿰뚫었는데도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스승님! 좁쌀만한 이가 대문짝만하게 보입니다.”

“이제 활쏘기를 배울 수 있을 만큼 됐구나.”

그런 기창에게 스승 비위는 본격적으로 활쏘기를 가르쳤다. 마침내 스승의 궁술을 터득한 기창은 이백 걸음 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백발백중시키는 명궁수가 됐다. 100개의 화살로 하나의 표적을 쏘면 첫 화살 꽁지에 다음 화살이 날아와 꽂혀 일직선을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놀라운 기창의 활솜씨도 아직 입신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승 비위가 우쭐한 기색의 기창을 불렀다.

“너의 궁술은 아직 도(道)에는 이르지 못했다. 나의 스승이신 감승(甘蠅) 어른을 찾아가거라. 그분에 비하면 우리는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해.”

 

기창은 태행산(太行山)에 은거하고 있는 감승 노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감승 앞에서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댕겼다. 마침 기러기 떼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휘잉.”

기창은 화살 하나를 날려 기러기 다섯 마리를 떨어뜨렸다.

이를 본 감승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이리로 따라 오게나.”

감승 노인은 기창을 데리고 수백 길 낭떠러지 앞으로 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반쯤 튀어나온 바위로 가더니 맨 가장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여기에 서서 아까처럼 쏴 보게나.”

기창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땀만 뻘뻘 흘렸다.

 

아찔한 절벽 끝에 선 감승 노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상공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독수리가 하늘 끝까지 날아가 깨알만하게 보이게 됐을 때 감승노인이 번쩍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독수리가 땅으로 뚝 떨어졌다.

‘불사(不射)의 사(射)’ 즉 화살을 쏘지 않고도 쏜 것이다. 기창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입신의 경지였다.

한참을 넋을 잃고 서있는 기창은 감승 노인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감승 곁에 9년 동안 머물면서 마침내는 활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는 지극한 경지를 깨쳤다고 한다.

 

진정한 활의 고수는 화살을 쏘지 않고도 과녁을 꿴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이제까지 붙들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된다. 활의 명인은 활을 치우고, 검의 달인은 검을 버린다. 번쩍이는 기예를 감추고 그것을 뽐내려는 마음조차 지워버린다. 그리고 노자가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비우는 것”이라고 일렀듯이 비우고 비워 마침내는 활이 무엇인지조차도 잊어버린다.

 

이는 마치 깨달음을 이룬 고승이 이름 없는 촌로가 되어 성속을 넘나드는 무애행(無碍行)을 보이는 것과 같다. 입신의 고수는 자기를 감추고 아는 듯 모르는 듯 말이 없다. 오히려 너무 범속해보여 “참으로 현명하면 어리석어 보이고(大賢若愚), 큰 기교는 유치해 보이며(大巧若拙), 말을 잘하면 어눌한 듯하다(大辯若訥)”는 노자의 말 그대로 된다.

 

기창의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뒷얘기가 전해진다. 감승 곁을 떠나 9년 만에 하산하는 기창의 얼굴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던 날카로운 표정은 사라지고 목각인형처럼 어수룩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기창의 백치 같은 얼굴을 보자 옛 스승 비위는 감탄하여 외쳤다.

“이제야말로 명인다운 얼굴이다. 기창은 이제 천하제일이 되었구나!”

기창이 하산했다는 소식이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에 퍼지자 사람들이 그의 솜씨를 보려고 떼를 지어 몰려왔지만 기창은 활을 손에 쥐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기창은 한 마디 하고는 입을 닫았다.

“지위(至爲)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至言)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며, 지사(至射)는 쏘지 않는 것이다!”

그 이후 기창이 활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기창이 천하제일의 명궁이라는 소문은 계속 퍼져나가 예전에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자랑할 때보다 이름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명궁 기창의 이야기에는 수졸에서 입신에 이르는 과정이 압축파일처럼 들어 있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비우려는 마음조차 비워 버려 아무 것도 거리끼지 않게 된다.

 

<오륜서>를 지은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도 책의 마지막인 공(空)의 장에서 검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말한다.

“도리를 얻은 뒤에는 도리를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손에 검을 들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선검일여(禪劍一如) 즉 나와 검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면 더 이상 칼에 집착하지 않는다. 무엇을 베겠다는 마음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된다.

 

마음이 텅 빈 경지를 <장자> 대종사(大宗師)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안회(顔回)가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한 가지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

“됐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얼마 뒤 안회가 다시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터득한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예악(禮樂)을 잊었습니다.”

“됐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다시 얼마 뒤 안회가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터득한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좌망(坐忘)하게 됐습니다.”

공자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앉아서 모든 것을 잊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손발과 몸뚱이를 잊고, 귀나 눈의 움직임도 멈추고, 몸을 떠나 지식을 버려서 큰 도(道)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도와 하나가 되면 좋고 싫음이 없어지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나도 네 뒤를 따라야 하겠다.”

 

‘앉아서 고스란히 잊는’ 좌망의 경지에 이르면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유유자적할 수 있다. 텅 비어 아무 것도 집착하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무(無)는 무(舞)로 통한다. 무(無)의 경지에 이르면 모든 것이 춤(舞)처럼 된다. 모든 것을 비운 입신의 고수는 걸음걸음이 아름다운 춤과 같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춤과 걸음의 차이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춤은 움직임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걸음은 목표에 도달해야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욕망이나 집착을 버리면 걸음은 춤이 되고, 삶은 노래가 된다.

 

검으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지운 사람, 손에 검을 쥐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은 가시밭길이라는 인생길을 춤추듯 걸어갈 수 있다. 그가 바로 입신의 경지에 이른 고수다.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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