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민특위' 발언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사진=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논란이 된 ‘반민특위’ 발언에 대해 해명했지만,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라며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 특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서훈자에 대한 전수조사 방침을 비판하며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해주실 것을 말씀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나 원내대표는 “자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던 극렬 공산주의자들까지 독립운동가 서훈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독립운동의 위대한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라며 “초중고 내 일본제품에 ‘전범딱지’를 붙여 아이들에게 쇄국 배타주의를 가르쳐서는 결코 이 나라를 미래로 이끌고 가지 못한다”고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 반'민'특위? 반'문'특위? 오락가락 해명

하지만 이같은 나 원내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된 발언이 반민특위가 아닌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었다는 해명은 이렇다 할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발언의 맥락상 ‘해방 후’는 광복 직후부터 분단체제 확립 이전의 시기, 또는 미소 군정기와 같은 시기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굳이 해방 이후 70여년이 지난 뒤 수립된 문재인 정권의 역사청산작업을 비판하기 위해 ‘해방 후’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반문특위’를 ‘반민특위’라고 잘못 표현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권이 정치적 의도에서 보수와 친일을 연결시키며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려 했더라도 그 예시로 ‘반민특위’를 드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식민지 시기총독부에 적극 협력하거나 독립운동가를 핍박했던 친일부역자에 대한 단죄는 신생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적 작업으로, 미군정기 이후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가장 먼저 제기된 정치적 이슈다.

행정 및 치안 상의 문제로 친일부역자 단죄에 소극적이었던 초대 정부조차 반민특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처벌 수위를 완화하고 대상을 축소하자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 정치적,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 구성된 ‘반민특위’를 반대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의 일례로 제시한 것은 여전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나경원 의원실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나 의원은 반민특위 활동 자체를 반대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반민특위 활동이 잘 됐어야 한다고 발언했다"며 "이런 맥락에서 23일 페이스북에 임우철 지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한 서한을 올리면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를 '반문특위'로 묘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반민특위 활동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며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친일로 몰아세우고 있다고 비판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것.

실제 나 의원은 '반민특위' 발언 다음날인 지난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반민특위 활동이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다. 해방 후에 이런 부분이 잘됐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그 활동(반민특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활동이 제대로 됐어야 한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후에 큰 국론 분열이 온 것처럼 지금 다시 과거를 헤집으면서 좌익 활동을 한 분 중에서 결국은 대한민국에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반대했던 분들까지 대거 (독립유공자로) 포함시켜서 또다시 과거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사진=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이승만의 대국민 담화, "친일 청산때문에 민심 분열"

실제 반민특위가 구성되던 1949년 국회에서는 반민특위가 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김준연 한민당 의원은 “우리가 국가적 양심이나 국민적 분노의 발로로서 민족정기를 바로 찾는 데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우리가 또한 정치가로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민법 제4조와 같이 범위가 광대하여 … 남한 사태가 혼란이 생긴다면, 5.10 총선거를 반대하고 우리 국회를 무시하려는 그 세력이 웃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약수 국회 부의장(조선공화당) 또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도 떨어져 나가고 순전히 애국자만 뽑을려니까 많은 인적자원이 부족해서 많은 고통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한다”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과 거의 동일한 발언을 한 정치인이 있다. 바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국내 정치기반이 취약해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승만 정부 당시 장관 각료 122명 중 57명이 일제 통치기구에서 일한 경력이 있을 정도. 이 때문에 내각 구성에 대한 비판이 반복해서 제기되자 이 대통령이 친일 문제로 인신공격을 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호소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반민특위에 반대 입장이었던 이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비판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는데 1948년 9월 3일에는 “지금 국회의 친일파 처리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선동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담화를 통해 반민특위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그대로 드러냈다.

♢ 부역자 청산 실패가 국론 분열의 원인?

반민특위의 문제는 친일파 처벌로 국론을 분열시킨 것이 아니라 청산 작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이강수 연구원은 2004년 발표한 논문에서 “반민특위는 당파의 갈등 속에서 친일파 숙청에 적극적인 인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친일파 숙청을 반대한 인물도 포함됐다”며 반민특위 초기 구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실제 반민특위는 1949년 6월 6일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사건 등으로 활동 8개월만에 이렇다할 성과 없이 해산했다.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친일파 처리 문제로 민심이 이산(離散, 헤어져 흩어짐)된다”는 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70여년이 지나 다시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민특위의 실패가 국론 분열로 이어졌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지난 15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인구 10만 명당 친나치 부역자들 징용을 보낸 숫자가 프랑스가 94, 덴마크가 374명이다. 네덜란드가 419명, 벨기에가 596명, 노르웨이가 633명이다”라며 “지금 거명한 유럽 국가들의 공통점은 과거 청산을  잘했기 때문에 현재 복지국가가 돼 있고. 국론분열이 없고 사회통합이 잘 돼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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