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 피해여성이 지난 14일 KBS 인터뷰에서 피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집단강간, 또는 특수강간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언론에서 해당 사건을 ‘성접대’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서,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고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법조계는 이 사건이 ‘성접대’가 아닌 특수강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수사 초기 경찰은 피해여성 및 별장 출입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 전 차관이 이권을 노린 윤씨로부터 성접대 로비를 받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2014년 7월 또다른 피해여성이 김 전 차관과 윤씨를 검찰에 고소하며, 이 사건이 단순 성접대가 아닌 특수강간사건임을 폭로했다. 피해자들은 유흥업소 종사자도 아닌 일반인 여성들이었으며, 자발적으로 성접대를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전혀 모르고 별장을 찾았다가 강제로 약물을 먹고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윤씨에게 이미 성폭행을 당한 뒤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성접대에 동원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피해 여성들의 이런 주장은 이 사건이 단순한 성접대 로비가 아니라 약물과 폭행, 협박이 더해진 특수강간 사건임을 반증한다.  이는 지난 14일 피해자 중 한 명인 이모씨가 KBS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14일 김학의 사건 피해자의 KBS 인터뷰 이후에도 국내 주요 언론에서 '별장 성접대'라는 표현이 계속 사용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문제는 해당 사건이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접대’ 사건으로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코리아>가 지난 14일 KBS 인터뷰 이후 국내 주요 언론들의 관련 기사를 검색한 결과 대부분의 언론이 김학의 사건을 다루면서 ‘성접대’라는 표현을 제목, 또는 본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우선 대부분의 일간지에서는 해당 언론의 평소 성향과 상관없이 ‘별장 성접대’라는 표현이 제목과 본문에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조선일보 “‘별장 성접대 의혹’ 김학의, 소환 불응으로 조사 무산”, 동아일보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 피해 女 “굉장히 난잡,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 중앙일보 “'김학의 별장 성접대' 피해 여성, 그 사람들 너무 무서워… 살려달라”, 한겨레 “‘별장 성접대 의혹’ 김학의 연락 끊고 소환 불응”, 경향신문 “‘김학의 별장 성접대’ 새 국면…국정농단 수사로 번지나” 등 15일부터 현재까지 '별장 성접대'라는 표현이 포함된 기사제목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제목이 아닌 본문에 ‘성접대’ 표현이 사용된 빈도는 더욱 높다.

공중파 3사 및 종편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피해여성과 인터뷰한 KBS 조차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 여전한데…진상조사단 활동 연장은?”과 같은 제목으로 보도 중이다. 지난해 서지현 검사 인터뷰로 미투운동을 촉발했던 JTBC 또한 “’별장 성접대 의혹' 김학의, 공개소환 불응” 등 동일 표현을 추가 설명 없이 사용 중이다.

이번 사건을 성접대라고 표현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데다, 피해여성들에 대한 2차가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성접대’라는 표현에서 독자들은 피해여성들이 유흥업소 등에 종사해왔으며, 대가를 받고 성접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직업이나 성접대 여부와 상관없이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강제로 폭행을 당했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성접대’라는 표현이 반복될 수록 사건에 연루된 여성들이 피해자가 아닌 성접대 로비의 조력자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약물과 협박 등으로 인해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성접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들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성접대 의혹일 경우 이번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특수강간 혐의가 적용되면 공소시효는 2024년으로 연장된다. 처벌의 수위도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의 중형이 가능해진다. 아직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진행 중이고 검찰의 재수사까지 가능한 사안을 반복적으로 ‘성접대’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만약 특수강간이라는 표현 또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 단계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면, ‘김학의 사건’처럼 가해자의 실명만 사용한 중립적인 표현도 가능하다.

김학의 사건의 피해자와 여성 단체들은 이 사건을 성접대가 아닌 성폭력의 차원에서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갈무리>

김학의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이찬진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재수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에서 “검사가 피해자를 소환하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수사 기획에 따라 ‘피해자가 대가 관계를 맺은 것’이라는 프레임을 사전 설정하고, 이 기조 하에 2013년 8월30일 8시간 동안 이루어진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내용은 조사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경찰에서의 7회의 걸친 피해자 진술의 내용을 탄핵하고, 자발적 성관계이거나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문제가 있다는 기조의 조서를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검찰이 ‘성접대’라는 렌즈를 끼고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으로서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는 점을 규탄하는 목소리다. '성접대'라는 렌즈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은 검찰 뿐만 아니라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이기도 하다.

법무부는 19일 김학의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단 활동 기간을 두 달 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진상 규명의 책임을 진 검찰 뿐만 아니라 언론 또한 김학의 사건을 '성접대 사건'이 아닌 '성폭력 사건'으로 다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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