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9일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의 수수료 협상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현대차와의 수수료 갈등에서 백기를 든 카드사들이 다른 대형가맹점과의 협상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대형가맹점의 ‘갑질’에 엄중대처할 것을 경고해온 금융위원회 또한 사실상 불개입을 선언해 카드사의 협상력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등이 모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지난 19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가맹점들의 매출과 이익이 급격히 감소해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수수료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며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정책에 반대했다. 협회는 이어 “(카드사들은) 수수료 산정기준을 공개하지 않았고,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나 근거 제시 없이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수수료를 인상했다”며 “가맹점은 카드수납 관련 비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고, 관련 비용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통사들도 마찬가지다. 통신 3사는 이미 지난 13일 카드사들에게 수수료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통사 또한 카드사가 수수료 인상의 합리적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일방적인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와 통신사 등 대형가맹점들의 강경한 태도는 이미 지난 현대·기아자동차와의 수수료 협상에서 예견된 바이기도 하다. 카드사들은 현대·기아차에 지난 1일부터 수수료를 0.1~0.15% 인상하겠다고 통보했으나, 현대·기아차가 계약해지로 맞불을 놓자 결국 차례로 백기를 들었다. 특히 대형가맹점의 계약해지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규모 카드사들이 먼저 현대·기아차의 수정 제시안을 받아들이면서 전열이 무너졌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텼던 업계 1, 2위 신한·삼성카드 등도 지난 12~13일 당초 인상폭보다 크게 낮은 현대·기아차 제시안을 수용했다.

카드수수료 협상전의 전초전이었던 현대·기아차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린 카드사들은 대형마트 및 통신사 등 여타 대형가맹점과의 협상에서도 곤란을 겪게 됐다. 다른 대형가맹점 입장에서는 카드사에게 현대·기아차 수준으로 수수료 인상폭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규모가 작은 카드사들이 대형가맹점의 압박에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업계 상위 카드사들도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쉽지 않다.

카드사 마케팅의 최대수혜자인 대형가맹점이 더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카드사의 손을 들어줬던 금융당국도 사실상 수수료 협상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원회 윤창호 금융산업국장은 19일 금융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에서 열고 “당국은 협상 완료 후 대형가맹점 등에 대한 카드수수료 적용실태를 점검하고 위법사항이 확인되는 경우 법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협상에 금융당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윤 국장은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대형가맹점들의 불만에 대해서도 “물론 카드사들이 원가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수료율이 올라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가맹점별로 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카드사의 설득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금융위는 대형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형사고발 조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이에 대한 처벌 수위는 징역 1년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당초 대형마트 및 이통사는 카드결제 비율이 높은 데다 카드 마케팅 혜택에 따른 고객 유인 효과도 커 카드사들이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에 임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와의 협상에서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데다, 금융당국도 직접 개입은 어렵다고 밝혀 카드사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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