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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 '정치인 실명' 공개시 명예훼손죄 적용될까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9.03.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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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고 장자연씨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배우 윤지오씨가 MBC 뉴스데스크에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MBC 방송화면 갈무리>

고 장자연씨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인 배우 윤지오씨가 가해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못하는 부담감을 호소했다.

윤씨는 지난 18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왕종명 앵커로부터 “장자연 문서에 등장하는 방씨 성을 가진 3명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누군지 공개할 의향은 없나?”라는 요청을 받고 “여러 가지 상황상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윤씨는 이어 이들이 누군지 실명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명예훼손 소송의 부담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그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라며 “(그들이) 명예훼손으로 절 고소하면 더 이상 증언자나 목격자 신분이 아니라 피의자로서 명예훼손 배상을 할 수 있다. 그분들에게 단 1원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왕 앵커는 실명을 밝히는 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더 빠른 길이라며 거듭 요청했지만 윤씨는 “제가 발설하면 책임져주실 수 있나?”라며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만약 윤씨가 이들의 정체를 이날 MBC뉴스데스크에서 공개했다면 실제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아 배상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을까? 안타깝지만 답은 ‘그렇다’이다.

♢ 공익성 기준, 법관마다 해석 달라 모호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과 특정성, 사실적시의 세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공연성)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여(특정성)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구체적 사실 또는 허위를 적시할 경우(사실적시) 형법 307조에 따라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다. 윤씨가 만약 왕 앵커의 요구에 응했다면, 공영방송에서의 발언인 이상 공연성은 물론 특정성과 사실 적시라는 요건도 모두 충족될 수 있다.

물론 윤씨가 사실을 공개하고서도 명예훼손죄를 면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씨의 발언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법원에서 인정되는 경우다. 대법원은 2003년 “형법 제310조에서 말하는 ‘공공의 이익’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며 ‘공익성’의 범위를 넓게 인정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08년 초등학교 기간제여교사 A 씨가 지자체 홈페이지에 같은 학교 교장의 차 접대 요구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사건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대법원은 “교육현장에서의 남녀평등은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고, 교육문제는 교육관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등 국가사회 일반의 관심사항이며, 교육문제에 관하여 정보가 공개되고 공론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는 점, 이 사건 글이 게재된 이후 교사 업무분장의 잘못과 부적절한 관행에 대하여 시정조치가 이루어진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글을 게재한 주요 동기 내지 목적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윤씨의 경우는 위 사례와 다를 수 있다. 법관의 판단에 따라 공익성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정반대의 판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임금을 체불당한 한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12년에도 한 여성 직원이 사장에게 언어폭력을 당한 사실을 종이에 적어 직원들이 자주 가는 식당 등에서 유포했다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 대법원 "공익목적 입증 책임은 제보자"

설령 법원이 윤씨의 진정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윤씨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윤씨가 자신의 발언은 사실이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윤씨 스스로 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8년 “피고가 그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없다고 항변할 경우 그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사유에 대한 증명 책임은 피고에게 있다”고 밝혔다.

오픈넷 자문 손지원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열린 명예훼손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위법성을 조각하여 최종적으로 처벌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 조각사유는 수사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지 않고 보통 기소/불기소 혹은 유죄/무죄 판단에 이르러서야 진지하게 고려된다”며 “판단이 제대로 이루어져 불기소 결정이나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처벌가능성을 사전에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죄에 대한 고소의 남발이 제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윤씨가 설령 재판에서 무죄를 받더라도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려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 지난해 법조계에서 시작해 문화계와 언론계 등 각계각층으로 확산된 미투운동의 고발자들을 가장 힘들게했던 것도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소송 남발과 그로 인한 공익성 입증의 부담이었다.

♢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장치 마련돼야

19일 MBC뉴스데스크는 공식 입장을 내고 윤씨에 대해 사과했으며 윤씨 또한 왕 앵커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서 윤씨가 짊어진 짐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윤씨와 같은 공익제보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노력이 필요하다. 법조전문가들 또한 언론의 자유에 무게를 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국내 법 체계에 대한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도 윤씨와 같은 공익제보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지난해 미투운동의 제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가 가해자들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왕 앵커의 실명 공개 요구에 “책임져 주실 수 있냐”고 반문한 윤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곳이 방송사 뿐만은 아닌 이유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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