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웹소설 <칠궁>
[웹소설] 칠궁 - 3장 호랑가시나무의 전설 ⑤
  • 금강 작가
  • 승인 2019.03.15 09:00
  • 댓글 0

5.

 

그 시각 서울역 부근 포장마차. 박찬일은 소주를 병째 들이키며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반장님 저 그만 둘랍니다. 우리가 권력 눈치나 보려고 경찰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부정부패를 도려내고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 서야 할 경찰 간부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김훈은 묵묵부답 소주잔만 기울였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박찬일의 울분에 공감한 때문이었다.

박준에 대한 증거조사를 마치고 소환 통보를 했을 때만 해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밤사이 자신감은 열패감으로 바뀌었다. 이튿날 아침 이세호 과장은 김훈을 급히 찾았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박찬일도 같이 불렀다. 과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두 사람, 칠궁 사건에서 손 떼.”

“네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수사를 그만 하라는 말이다. 오늘 부로 쫑내.”

과장의 태도는 단호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찬일이 불만을 터뜨렸다.

“과장님 너무하시네요. 그동안 밤을 새워 수사해서 이제 본격 궤도에 올랐는데 무조건 손을 떼라니 납득을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상부 명령이야. 군소리 말고 지시에 따라.”

“전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까. 청장님입니까 아니면 청와대입니까.”

박찬일은 대들 듯이 맞섰다. 과장이 노한 표정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지시를 거부하는 거야 뭐야. 둘 다 보직 변경 당하고 싶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훈이 나섰다.

“과장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지금 말씀은 수사 라인을 교체하겠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이번 사건 자체를 덮겠다는 뜻입니까.”

“후자야.”

김훈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과장을 바라봤다. 박찬일은 과장을 노려보다 말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과장이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김반장. 내가 충고했었지. 박준에 대해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고. 자네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게 화근이 됐어.”

“압니다 과장님. 하지만 혐의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암튼 이 시간 이후로 수사를 중단해. 더 나가면 다쳐. 무슨 뜻인지 알겠나.”

과장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자리를 떴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박찬일이 소리쳤다. 그러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포장마차 주인이 인상을 썼다.

“안주도 좀 시키셔. 오뎅 국물만 축내지 말구.”

“걍 소주만 줘요. 속상해서 뭘 처먹을 기분이 아니니.”

주인이 소주병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고 사라졌다. 박찬일이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참나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반장님 이참에 경찰 확 때려 치고 흥신소나 차리죠.”

얼큰하게 주기가 오른 김훈은 피식 웃었다.

“흥신소? 남 뒤나 캐는 게 뭐가 좋다구. 게다가 수사권도 없잖아.”

“그래도 부당한 간섭은 받지 않잖아요. 대한민국 경찰을 뭘로 보고 권력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과장은 그 앞잡이 짓이나 하고.”

“과장 탓은 하지 말자구.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지. 그나저나 자네 궁금하지 않나. 난 말이야 칠궁사건의 범인이 누굴까 몹시 궁금해.”

“그러게 말입니다. 박준을 불러다 추궁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이젠 그것도 물 건너갔으니. 반장님 우리 상부에 보고는 하지 말고 은밀히 수사해보는 건 어때요. 마침 옥나비 지문 감식 결과도 나왔던데.”

“장희빈 묘에서 수거한 나비 모양 노리개 말인가. 지문이 흐릿해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더니 언제 나왔어.”

“아침 출근길에 통보받았어요. 2차 정밀 감식 결과 신원이 밝혀졌답니다. 이름은 장연아고 거주지는 백사마을이더군요.”

“백사 마을? 장희빈 묘가 거기서 가까운 건가. 장연아가 뭐하는 여잔데 옥나비에 그 여자 지문이 찍혀 있는 거지?”

“탐문 수사를 해볼까요. 이번엔 뭔가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김훈은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불쑥 내뱉었다.

“자네, 옷 벗을 각오가 돼 있나.”

“당근이죠. 전 하나도 겁이 안 납니다. 막말로 저희들이 잘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는 건 오히려 권력자들 아닙니까. 처벌하려 들면 끝까지 맞설 겁니다. 반장님 생각은 어때요.”

“내 생각은 백사마을이야.”

“예에?”

박찬일은 눈을 크게 떴다. 김훈이 잔을 엎은 뒤 일어섰다.

“출동하자구.”

 

한 시간 뒤 불암산 자락. 박찬일은 끙끙대며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비탈길 여기저기 연탄재가 잔뜩 쌓여 있었고 미로 같은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에구 힘드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달동네가 있었나.”

“그러게 말이야. 사방이 판잣집이니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가네. 주소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봐.”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로 돼 있는데요. 저기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 보이네요. 쫓아가서 물어볼게요.”

후줄근한 옷차림의 노인이 빈 박스를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었다. 박찬일이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백사마을이 어딥니까.”

노인이 뒤를 돌아보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누구쇼.”

“경찰입니다.”

“경찰이라고? 여기 경찰관은 아닌 모양이네. 백사마을을 모르는 거 보니.”

“예 출장을 왔습니다. 사람을 찾는 중인데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요.”

“여기가 백사마을이야. 흰 뱀이 사는 마을이라 백사가 아니고 104번지에서 유래한 거야. 근데 누굴 찾아.”

“장연아라고 30세 여성인데요 혹시 아십니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찬일은 꾸벅 절을 하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잠깐. 그렇게 해선 못 찾아. 이곳은 빈집이 많아. 주소는 걸어놓고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 되고. 이 비탈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점집이 하나 보일 거야. 거기 가서 물어봐.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살았으니 알지도 모르지.”

김훈과 박찬일은 헉헉대며 비탈길을 올랐다. 술기운까지 겹쳐 숨이 가빴다.

“저기 저 집 같은데요 반장님.”

산 끝자락에 오색 깃발이 펄럭였다. 그 아래에 만신, 이라고 씐 입간판이 보였다.

“반장님 만신이 뭐죠. 만 명의 신이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까.”

“만신은 무속인이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 아닌가. 일단 들어가 보세.”

김훈이 먼저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소리가 나자 안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가! 꺼지라고.”

박찬일이 뒤따라 들어가다 말고 흠칫 했다. 곧 이어 호호백발의 노파가 뛰쳐나왔다. 노파의 손엔 연탄집게가 쥐어져 있었다.

“당장 꺼지라는데도 뭘해!”

노파는 쇠꼬챙이를 꼿꼿이 세웠다. 금세라도 찌를 기세였다.

“죄송합니다. 집주인이십니까.”

“필요없어. 너 같은 놈들 이젠 신물이 나.”

“저희는 점 보러 온 것 아닙니다. 고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노파는 집게를 맹렬히 휘둘렀다.

“나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야.”

박찬일이 급히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진정하세요 할머니. 저희들 경찰입니다.”

“뭐라. 경찰이라고? 진짜야.”

노파가 반신반의하자 김훈은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노파가 집게를 내려놓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십년 감수했네. 난 또 그 놈 패거린 줄 알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놈이 누군데 그래요.”

“말도 마. 웬 거지 땡추가 집에 들어와서 소동을 피워 내쫓았더니 야밤에 담 넘어 들어오질 않나 며칠째 괴롭혀서 못살겠어.”

순간 박찬일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혹시 그 땡초 말입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손이 솥뚜껑같이 커지 않습니까. 이마에 큰 점도 있고. 말할 때 횡설수설 하지 않습니까.”

“마 맞아. 헌데 그 놈을 어떻게 알지.”

김훈과 박찬일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마주봤다.

“반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땡초가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김훈은 대답 대신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중이 처음 온 날이 언젭니까.”

“일주일 넘었지. 그 뒤로 매일같이 찾아오더니 오늘은 아직 안 왔어. 그래서 틀림없이 그 놈인줄 알고 부지깽이를 휘둘렀네. 미안허유.”

“괜찮습니다. 근데 중이 뭐라고 하면서 소란을 피웠습니까.”

“여기가 장옥정 혼이 거주하는 곳인데 어딜 갔나 묻더라구. 재수 없으니 그만 나가라고 했더니 버티고 앉아서 주문을 외우면서 별 희한한 소리를 늘어놓더라고. 지금은 유체이탈 중이지만 곧 돌아올 것이니 만나봐야 쓰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나 원 참.”

“할머니 그 땡초는 또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혹시 또 찾아오면 그땐 이 번호로 연락주세요. 제가 혼쭐을 내놓겠습니다.”

박찬일이 호기롭게 말했다. 노파가 그런 박찬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고맙수. 그런데 경찰이 여긴 웬일이여.”

“여자를 찾는 중입니다. 마을 주민이 이 점집에 물어보라고 해서요.”

“찾는 여자가 누군데.”

“이름은 장연아고, 나이가 서른쯤 됩니다.”

그 말에 노파의 안색이 싹 변했다. 김훈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장연아씨를 아는 눈치네요. 장씨와 어떤 관계입니까.”

노파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뒤 당당하게 말했다.

“알다마다. 그 분은 이 집 만신이오.”

“뭐라구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몰라. 여길 떠난 지 꽤 오래됐어.”

“장연아씨 주소가 여기로 돼 있던데 그럼 주소지만 여깁니까.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 주시죠.”

“무슨 일로 우리 만신을 찾는 건가. 먼저 그것부터 말해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들이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찾아온 거고요.”

“혹시 안 좋은 쪽으로 관련 있나. 만신께선 남을 해할 분이 아니신데.”

“그건 아직 모릅니다. 가해자일지 피해자일지는 수사를 더해봐야 됩니다.”

노파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중얼거렸다.

이것도 운명인가. 전생에 선연과 악연이 모여 파도를 이루는구나. 만신께선 이 겁난을 어찌 감당할꼬.

김훈은 노파를 주시했다. 노파가 자세를 고쳐 앉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들으시오. 댁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소. 작은 인연이 모여 큰 인연을 만드는 법. 세상의 이치도 다를 바 없소. 만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겠소. 내가 이 백사마을에 둥지를 튼 건 50년 전이오. 스무살 젊은 나이에 신내림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내 눈에 귀신들이 쑥쑥 들어와. 빗자루 귀신, 부엌 귀신, 몽달귀신,고속도로에서 울고 있는 처녀귀신의 모습이 눈에 다 들어와. 용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부자고 빚쟁이고 할 것 없이 구름같이 몰려드는데 그땐 정말 기고만장 우쭐했지. 돈도 많이 벌었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거야. 손님이 와서 뭐라고 상담하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어. 영안이 열려야 보이는데 그게 사라진 거야. 눈앞이 캄캄해지더군. 그 뒤부터 손님도 끊기고 모아뒀던 돈도 몽땅 사기를 당해 알거지 신세가 되고. 얼마나 비참하던지.”

노파는 서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훌쩍 거렸다. 주름진 이마 아래 눈물방울이 비쳤다. 김훈은 뭔가 말을 건네려다가 참았다. 노파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만신을 처음 뵌 것은 3년 전이오. 그날 만신께선…….”

 

비바람 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한 명의 손님도 없어 노파는 방안에서 맥없이 빗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순간 노파는 전율했다. 여인의 온 몸에서 무섭도록 큰 기운이 전해져 왔다. 노파는 그 거대한 힘에 이끌려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신지요.”

“아파요. 몸이 너무 아파서 왔어요. 절 좀 낫게 해주세요.”

여인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은 채 호소했다. 노파가 여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어디가 아파요. 자세히 말해 봐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요. 자꾸 헛게 보이고 환청 같은 것이 들려요. 병원에 가도 소용없고 약을 타다 먹어도 낫지 않아요. 누군가 제 목을 짓눌러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무서워요. 죽을 것 같이.”

노파는 직감했다. 젊은 날 자신도 여인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 처방은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신병입니다. 지금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건 강신무(降神巫)가 정식 무당이 되기 전에 겪는 신내림 현상이에요, 내림굿을 받아야 해요. 그러면 병이 씻은 듯 나을 겁니다.”

“싫어요. 그러면 무당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죽으면 죽었지 그건 싫습니다.”

여인은 뜻밖에 완강했다. 노파는 이해했다. 내림굿을 받기 전 자신도 그랬다. 노파는 재차 설득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지만 내림굿을 받지 않으면 어떤 방법의 치료도 불가능해요. 신 내린 사람은 영의 매개자예요. 영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 역할을 하지요. 그걸 거부하니 몸이 그렇게 아픈 겁니다. 받아들이세요. 신께서 그걸 원하십니다.”

“아니오 저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저는 꿈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무당이 되면 그럴 수 없잖아요.”

“아닙니다. 무당도 보통사람처럼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삽니다. 무당 몸의 주장신이 싫어하긴 하지만 잘 달래면 화를 입지 않아요. 그러니 안심하고 신내림을 받아요.”

그 말에 여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퇴마를 해주세요. 신내림 대신 퇴마를 통해 병을 낫고 싶습니다.”

“퇴마로 치유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퇴마 의식으로 인해 병이 더 깊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돼 죽는 사람도 있고요. 잘 들으세요. 님은 만신이 될 운명입니다. 운명을 거부하면 오히려 화를 입어요.”

“싫습니다. 죽어도 무당은 싫어요.”

“그럼 나도 어쩔 수가 없네요.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어요.”

“청이 있습니다.”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이 집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시키는 건 뭐든 다하겠습니다. 밥을 하시라면 밥을 하고 빨래를 하라면 빨래를 하겠습니다. 그저 붙어 있게만 해주세요.”

“신내림을 받지 않겠다더니 점집에서 왜 살려고 그래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편해요.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그걸 느꼈어요.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노파는 여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다음 상석에 모시고 큰 절을 올렸다.

“만신님을 모시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마음이 변하시거든 신내림을 받으십시오. 그때까지 마음 편하게 지내시고요.”

 

노파는 거기까지 말한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훈은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여자가 장연아씨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두 달쯤 살더니 주소를 여기로 옮겼지. 이름과 나이는 그전에 사주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그럼 그 뒤로 장씨가 내림굿을 받았습니까.”

“아니 안 받았어. 하지만 신내림을 받지 않고도 신통력이 참 대단했지. 평생을 무속인으로 살아오며 별별 귀신 다 봤지만 그렇게 센 신은 못 봤어. 내가 모시는 장군님은 그 분 앞에 서면 벌벌 떨어.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연아가 온 다음 날이었다. 손님이 찾아와 물어보는데 노파는 곤혹스러웠다. 그전 같으면 장군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됐지만 영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연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남자 없이 못사는 여자군. 밤마다 그 생각에 잠을 못 이루지?”

“그 그걸 어떻게.”

40대 여자 손님의 얼굴이 홍당무 빛으로 변했다.

“부적 부탁하러 온 거지. 남편 몰래 붙이려고.”

여자의 얼굴이 이번엔 흙빛으로 바뀌었다.

“부적 해주지마. 이 여자 바람났어. 그래서 남편 저주하고 해코지하려고 온 거야. 내쫓아.”

여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연아가 여자를 노려봤다. 여자는 사색이 된 채 뒷걸음질쳤다.

캐액, 노파가 가래침을 내뱉은 뒤 말을 계속했다.

“만신께선 불의한 짓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어.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와서 봐달라고 해도 내키지 않으면 돌아섰지. 덕분에 쇠락해가던 이 점집도 활기를 되찾았고.”

“그런데 왜 여길 떠난 겁니까.”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됐어. 취직된 뒤에도 한동안 여기서 출퇴근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졌어.”

“언젭니까 그 때가.”

“2년 쯤 됐어.”

“그 뒤로 소식이 없습니까.”

“없어. 편지 한 장 달랑 보내온 것 빼곤.”

“그 편지 갖고 있습니까. 한번 보여주시죠.”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랍장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별 내용은 없어. 보고 싶으면 직접 봐.”

노파의 말대로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 건강하시라는 두 줄밖에 없었다.

박찬일이 편지 겉봉투를 흘낏 보더니 물었다.

“어 이상하네요. 발신인 주소가 왜 없죠? 혹시 몰래 와서 편지만 놓고 간 것 아닙니까.”

“아냐. 우체부가 와서 직접 전해주고 갔어. 내가 확실히 기억해.”

“우체부가 배달했으면 소인이 찍혀 있을텐데 자세히 봐봐.”

김훈의 말에 박찬일은 봉투를 꼼꼼히 살펴봤다. 박찬일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반장님 이거 좀 보세요. 이거 일반 봉투가 아니라 회사 봉투예요. 오성그룹 마크가 찍혀 있는데요.”

“뭐라고 정말 ?”

김훈이 봉투를 빼앗아 확인했다.

FIVE STAR.

봉투 상단에 영문으로 된 오성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순간 김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오성-이숙종-이명신-박준-장연아. 각각의 이름이 일직선으로 연결됐다. 김훈이 박찬일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래 오성이야! 사건의 중심에 오성이 있어. 장연아를 꼭 찾아야 해. 그 여자가 열쇠를 쥐고 있어.”

“알 것 같네요. 그런데 장연아 소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요.”

“찾아야지 어떻게든. 일단 오성그룹 비서실장을 통해 알아 볼테니 자넨 박준을 감시해.”

“박준은 왜요. 과장님이 알면 생난리를 칠 텐데.”

“생각해봐. 장연아가 오성에 들어간게 딱 2년 전이야. 이명신이 키톤 양복을 구입한 날짜도 2년 전이고. 우연의 일치치곤 기가 막히게 겹쳐. 이 모든게 오성그룹과 무관하지 않아. 이명신은 접근하기 어려우니 차선책으로 박준의 뒤를 캐야 하지 않을까. 내 직감인데 박준의 동선을 은밀히 쫓다보면 뭔가 걸릴 것 같아.”

“알겠습니다 반장님. 이제부터 박준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겠습니다.”

“들키지 마. 신분이 발각 나는 날엔 끝장이야.”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e-korea@naver.com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금강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