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한국인 스위스 원정 안락사] 유럽 미국의 사례는?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9.03.06 17:27
  • 댓글 0
지난 2년간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조력자살을 시행한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의 홈페이지 화면. <사진=디그니타스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통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환자가 직접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만 허용되고 있는 국내에서도 ‘조력자살’과 같은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는 지난 2016년, 2018년 각각 1명씩 모두 2명의 한국인이 해당 기관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날 디그니타스 외에도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 등 안락사를 돕는 단체 두 곳에 총 107명의 한국인 회원이 등록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디그니타스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 두 사람의 경우는 안락사의 여러 분류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조력자살’에 해당한다. 안락사는 크게 연명 목적의 치료를 중단해 삶을 마감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약물 투여 등의 개입을 통해 삶을 마감하는 적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 중에서도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처방받은 약물을 직접 주입해 사망하는 경우는 ‘조력자살’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 ‘조력자살’, 서유럽에서도 의견 분분

조력자살은 현재 국내에서는 금지된 방식의 안락사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초 존엄사법이 시행된 후 환자의 자발적 결정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만이 허용된다. 반면 해외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를 넘어 조력자살까지도 법적으로 허용되는 경우가 차츰 늘고 있는 추세다.

의사가 자살 목적의 약물을 처방하도록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 외에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지난 2002년, 룩셈부르크는 2009년 안락사 관련법안을 시행해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조력자살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고통이 개선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확하며 △환자가 심사숙고한 끝에 자발적으로 조력자살을 요청하고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상의해 처치기준을 결정하며 △결과를 지방 검시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반면 같은 서유럽 국가 중에서도 영국, 독일 등은 조력자살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최근까지도 조력자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이어졌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영국은 자살법 2조 1항을 통해 타인의 자살, 또는 자살미수 행위를 조장하거나 도운 사람의 형사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환자의 자발적인 요청이 있을 경우 처벌이 무겁지는 않은 편이다. 지난 2010년 딸의 자살을 도와 조력자살 및 모살 미수 혐의로 기소된 케이 길더데일의 경우 모살미수는 무죄, 조력자살은 12개월의 조건부 석방을 선고받았다. 이는 그의 딸이 근육통성 뇌척수염으로 17년간 고통받아왔으며 길더데일에게 자살을 도와달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 조력자살을 둘러싼 쟁점은?

여러 사회적 이슈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 발 앞서 진보적인 판단을 내리는 서유럽 국가에서도 조력자살 허용 여부는 논쟁이 분분한 문제다. 조력자살 찬성론자들은 모든 사람이 죽음에 앞서 고통을 최소화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이 어떤 마지막을 맞이할 지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조력자살이 생명권에 대한 침해이며 자칫 생명경시 풍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조력자살이 편의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조력자살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제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국의 킬더데일 사건과 달리, 같은 해 아들에 대한 모살 혐의로 기소된 프랜시스 잉글리스는 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유는 아들이 헤로인 중독에 교통사고로 심각한 장애를 입어 의사소통이 어려웠으며, 조력자살에 대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잉글리스는 자신의 행위는 모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살인이 아니라고 부정했음에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조력자살을 요구한 환자가 치매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포함해 여러 명의 전문가와 먼저 상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상담자는 조력자살을 수행할 의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전문가 중에서 구하도록 해, 혹시 모를 조력자살 오용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을 원하는 정신질환자의 ‘자발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조력자살을 허용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이 무엇이냐는 문제도 해답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통의 의학적인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지면 각자가 경험하는 고통의 정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가디언지는 지난 2009년 디그니타스에 조력자살을 시행한 영국인 115명을 조사한 결과 류머티스성 관절염, 크론병, 신장질환 등 치료 가능하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다수였다고 보도했다. 조력자살을 허용하더라도 대체 그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해야 하느냐는 오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 국내 여론, 연명치료중단 'OK' 조력자살 'NO'

안락사를 허용할 것이냐는 단순히 법적인 차원을 넘어서 수많은 사회적,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국내에서는 아직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대체로 여론은 안락사 허용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 2016년 일반 국민과 암환자 및 그 가족, 의사들에게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응답자의 비중은 일반인 66.5%, 암환자 60.0%, 가족 55.3%, 의사 77.2%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반면 조력자살의 경우 일반인 35.9%, 암환자 29.7%, 가족 25.8%, 의사 27.3%로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이는 연명치료중단과는 달리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다수 여론에게 수용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랜 안락사 논쟁을 겪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상당히 다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2012년 갤럽이 유럽 각국에서 시행한 조력자살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영국 등 조력자살이 금지된 국가에서도 80% 이상의 찬성의견이 나왔다. 미국의 경우도 지난해 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조력자살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스위스 디그니타스에서 적극적 안락사를 선택한 두 한국인의 사례가 밝혀지면서 향후 국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방식에 대해 섣부른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해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