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틀째인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난 가운데, 협상 결렬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영변 외 북한 핵시설의 존재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오후 2시(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외에 추가적인 핵시설 폐기를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시설이 우라늄 농축시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뒤 “우리가 (해당 시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또한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핵시설이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지의 핵시설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있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약속하며 경제 제재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은 영변 외에도 주요 핵시설 폐기를 요구하며 판을 키웠다는 것.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통큰 ‘빅딜’을 받아들이지 못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물러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빅딜’의 핵심인 숨겨진 핵시설은 어디일까? 가장 유력하게 지목되는 곳은 평양 근교 강선 단지다. 지난해 7월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의 보도로 알려진 강선 단지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평양 외각 천리마구역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디플로맷은 “북한이 강선에서 처음으로 기체 원심분리기 시설을 가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단지 중심부의 대형 건물에 원심분리기 캐스케이드가 설치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라늄 농축시설이 평양 근교에 위치한 것에 대해서도 “평양 근교에서 10여 년간 우라늄 농축 활동을 이어왔고, 이는 원활한 가동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해당 핵시설이 영변보다 규모가 크다고 언급했던 만큼 강선 단지가 미국의 추가 요구사항이었을 가능성은 높다. 2001년부터 강선 단지의 위성사진을 분석해온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은 4일 동아일보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에 추가로 요구한 부분이 제2의 우라늄 농축시설이라면 이는 강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강선 단지는 이미 미 정보당국이 2010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시설인데다 지난해 한미 언론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만큼, 북한을 놀라게 할 만한 히든 카드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 또한 당시 "해당 지역이 무기 생산 부지의 특성 일부를 띠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상황적 요인을 고려할 때 다른 목적으로 사용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강선 단지가 우라늄농축시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강도 희천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시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알파’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강도 남부에 위치한 희천은 발전소, 기계공장 등이 밀집된 북한의 대표적 공업도시 중 하나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희천을 방문할 때마다 희천에 위치한 연하기계공장을 빠짐없이 들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정밀부품을 생산하는 해당 공장에서 핵미사일 부품이 제작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1년 한 탈북자가 “자강도 희천에 원심분리기 제작 공장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국내 세종연구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도 연하기계공장 및 자강도 희천시 하갑 핵시설에 농축우라늄시설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비밀 핵시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은 영변 등 우라늄농축시설 외에도 고폭시험장, 우라늄 광산, 정련공장 등 30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루이스 연구원 또한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영변과 강선을 밖에 공개하는 대신 제3, 제4의 핵시설을 숨기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시설이 아닌 다른 요구를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발사시설이다. 그 중에서도 평양 인근에 위치한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는 미 동부 해안이 타격 가능한 ICBM급 화성-15을 생산한 곳으로 미국 정보당국의 핵심 관리대상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7월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지역에서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ICBM 이 생산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 또한 산음동 연구단지 주변에 지속적인 차량들의 움직임이 정보위성에 의해 포착됐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북한 핵무기의 미국 본토 도달 가능성은 비핵화 협상에서 핵심적인 고려대상인 만큼, 미국이 해당 시설의 폐쇄를 요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가 요구가 특정 시설의 폐쇄가 아니라 북한이 현재 보유한 전체 핵전력 목록의 신고였을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 측이 비핵화 범위를 규정할 때 영변 외의 핵시설뿐만 아니라 미사일 시설, 핵탄두 무기체계 등이 빠져있었다며 합의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에 보고할 핵목록 신고서의 범위를 두고 양측 이견이 컸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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