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보험개발원에서 열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보험약관 마련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유방암 진단으로 암 절제술을 받았던A씨는 4 년 뒤 정기 검진에서 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A 씨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수차례 폐색전술을 받았고 비용을 보험사에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암의 직접적인 치료목적으로 행한 시술이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간암 진단을 받은 B씨는 이후 다행히 간이식수술에 성공, 종양을 제거했으나 이후 담도문합부가 협착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B 씨는 협착된 문합부를 넓히기 위해 풍선확장술을 받고 보험사에 비용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풍선확장술과 암치료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위에 서술한 보험금 지급 분쟁 예시는 실제로 지난 2010년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실제 사례다. 일견 비슷해보이는 두 사례에 대해 대법원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A씨는 보험금을 받았지만,  B씨는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두 사람의 재판결과를 가른 것은 “암의 직접적인 치료목적”이라는 암보험 약관의 모호한 표현이었다. 대법원의 해당 약관에 대한 해석은 '폐색전술은 암치료 목적의 수술이지만, 풍선확장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만약 보험 약관이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면, 또는 가입자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했다면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장기간의 보험금 분쟁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보험 약관은 가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부자연스러운 문장,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피상적인 표현들로 채워져있다.

보험개발원이 매년 특정 보험상품을 선정해 약관의 소비자 친화성을 측정하는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결과를 보면 국내 보험사들의 약관은 아직 개선될 여지가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생명·손해보험사의 보험종목을 각각 4종으로 나누어 매년 심사하는 이해도 평가는 약관의 명확성과 평이성, 간결성, 소비자친숙도 등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지난 13~16차 평가결과에 따르면 전반적인 보험약관의 이해도는 점차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문제점이 발견된다. 장기손해보험, 일반손해보험, 장기질병보험의 경우 우수등급을 받은 손보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생보사 또한 연금보험을 제외한 변액보험, 제3보험, 정기·종신보험에서는 우수등급을 받은 곳이 많지 않았다.

또한 평가위원의 주관적 종합평가항목인 소비자 친숙도나 간결성은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명확성과 평이성 항목의 점수는 대체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보험가입자가 보장 내용을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명확성은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연금보험과 자동차보험을 제외한 보험상품 6종의 평균 득점률은 양호 등급 기준인 70%를 넘기지 못했다.

가입자가 약관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필수적인 해설을 추가하고 중요 내용이 제대로 배치되었는지를 평가하는 평이성 항목의 경우 평균득점률 70%를 넘은 보험상품은 제3보험이 유일했다. 특히 일반손해보험의 경우 평이성 항목의 평균득점률은 겨우 35.8%. 보험사는 명확하고 간결하게 보장내용을 설명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가입자들은 약관을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험가입자와 보험사의 약관에 대한 해석이 달라 보험금 지급을 놓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사간의 갈등을 초래한 즉시연금 문제의 경우 “연금 지급 시 만기환급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명확하게 포함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자살보험금 문제 또한 일본 보험상품의 약관을 베껴쓰는 과정에서 자살을 재해사망 특약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수천억원의 미지급금이 발생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진 사례다.

금융당국 또한 잦은 보험금 지급분쟁을 야기하는 보험약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6일 보험개발원에서 열린 '소비자 논높이에 맞춘 보험약관 마련을 위한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보험시장은 전세계 7위에 육박하고 있지만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며 "이는 보험약관의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약관을 만들기 위해 '보험약관 제도개선 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또한 27일 보험 약관 관련 전문위원회를 설치해 표준약관을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보험약관에 대한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이 보험사들의 자체적인 개선 노력으로 이어질지 불확실한 만큼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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